장수농협 '킹크랩 사와라' 사실이었다
장수농협 '킹크랩 사와라' 사실이었다
  • 신영배
  • 승인 2023.04.1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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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기자
신영배 대표기자

지난 1월 12일, 전북 장수농협에서 근무하던 30대 청년이 직장 내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승용차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결혼 3개월 차 새신랑이었던 이 씨는 지난해 9월에도 결혼을 앞두고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다행이도 가족이 발견해 소생했다.

그러나 지난 1월 새 센터장 A씨가 상사로 부임한 후 갑질이 더욱 심화되면서 이 씨는 끝내 삶을 포기했다. 이 씨는 유언장에 “수많은 괴롭힘으로 견디기 힘들어 무력함과 자괴감, 수치심으로 인해 견딜 수가 없어서” 삶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남겼다.

이 씨의 유족에 따르면 센터장 A씨는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이 씨에게 “왜 일을 그렇게밖에 못하냐”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겠다”라는 등 폭언을 했다. 또 이 씨가 직원전용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A씨는 “네가 뭔데 여기에 주차를 하냐” “너희 집이 잘사니까 킹크랩을 사 와라”라는 등 갑질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씨는 킹크랩을 사기 위해 장수에서 서울 노량진시장을 오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는 A씨의 괴롭힘을 장수농협에 통보했으나, 농협은 가해자와 지인 관계인 공인노무사를 선임해 조사하게 했다. 조사에 임한 공인노무사는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편향적인 조사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며 ’혐의없음‘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노동부 조사결과 밝혀진 것이다.

이 씨는 노무사의 '혐의 없음' 결론과 가해자의 괴롭힘이 그치지 않자 절망적인 생각에서 결국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여론이 악화되자 고용노동부는 장수농협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했다. 그 결과, 직장 내 괴롭힘과 불리한 처우 등 위반사항과 공인노무사법 위반사항까지 무려 15건의 위법 사항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고용노동부는 이 씨를 괴롭힌 가해자 4명에 대해 징계를 요구하고 그 결과를 제출하도록 조치했다. 

아울러 일부 사안에 대한 형사입건과 근로기준법 등을 위반한 내용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위법 사항에 대한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직장 내 갑질을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으로, 잠시 여론을 잠재우는 수단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으로 그동안 곳곳에서 벌어진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노출되고 상당한 반향을 불러오고 있으나 시간이 흐르면 다시 흐지부지 지워져 어디선가 또다시 이 씨와 같은 피해자가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정부차원의 근본적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역농협의 직장 내 갑질사례는 장수농협 이외에도 지난해 10월에 말썽을 빚은 광주 모 농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농협은 조합장이 해고한 직원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통해 복직을 하자 조합장이 나서 부당한 작업을 지시하고 폭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또 강화지역의 한 농협에서도 조합장과 면담 중에 한 직원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며 조합장의 뜻과 다른 생각을 내놨다가 자동차로 출퇴근을 할 수 없는 섬(島) 지역으로 발령한 일도 있다. 제왕인 조합장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였다. 이 때문에 홀로 초등학생을 키우던 직원은 학교조차 없는 섬에서 자취생활을 해야 했다. 특히 어린 딸은 혼자 밥을 해 먹으며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피해자는 이런 사실을 청원해 다시 발령을 받았으나 문제의 조합장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결국 농협중앙회가 개입해 해당 조합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전북 부안의 모 조합에서도 조합장 출신지역 직원들을 인사, 업무상 우대하고 조합장에 밉보인 직원에게는 인사상 불이익은 물론 업무 또한 한직으로 발령하는 등 갑질을 일삼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대구 모 조합장의 하청처리 문제, 안동 모 조합의 직원 갑질 문제, 인천 모 지역 조합장의 직원 끌어안기 성추행 문제, 창원지역 모 농협장의 성추행에 모녀 1인 피켓 시위 등 전국에서 조합장에 대한 갑질 사례가 온라인에 등장하고 있다.

특히 조합장과 직원 관계는 조합장이 인사권을 쥐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심복을 길러 조합의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파악하며 관리하기 때문에 친(親), 불친(不親)에 따른 갈등이 쉽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제왕적인 조합장이 연임하는 동안 심복으로 활동하며 승진을 거듭한 직원은 조합장을 등에 업고 갑질을 일삼기도 하고 조합장의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기도 한다. 당연히 직원들은 조합장에게 충성을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조합장은 지역의 유력인사로 비중이 높아지고, 웬만한 조합원은 조합장 선거에 감히 맞서서 경쟁하지 않으려 한다. 간혹 기세 좋게 덤비는 인물이 있지만, 대부분 현직 조합장은 연임을 한다. 지난번 조합장 선거에서도 무투표 당선자가 상당수 나온것은 이를 반증하는 사례다. 

조합장 가운데는 수십 년 동안 연속해서 조합장으로 재직해 직업이 조합장이라고 적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수십 년씩 하다가 자식이나 친척에게 물려준 사례도 있다. 이런 상황이니 조합장은 조합의 왕으로 권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 

지역조합의 운영이 지역 내에서만 이루어지고 자체 결산으로 모든 내용이 완결되어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외부에서는 알지 못한다. 중앙회나 지역본부 등에서 임의로 감사를 할 수도 없다. 사실상 치외법권 지역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런 폐해를 없애려면 조합장 연임제도를 제한해야 한다. 즉 협동조합 내 갑질은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누구도 조합을 개인 것처럼 운용하지 못하도록 인사는 중앙회가 관리하고 조합 결산은 공인회계사가 전담해 중앙회에 보고하는 형식을 통해 명백하게 조합원은 물론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

조합장은 오로지 조합과 조합원들의 이익을 지키는 역할에 충실해 조합원의 대표로 직원의 업무에 최대효과를 거두도록 협조해야 한다. 사실상 조합장의 역할이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도 조합장이 조합의 어른 노릇을 하면서 사익을 챙기고 있으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회에서도 조합장의 횡포를 견제하는 법안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조합장의 막강한 영향력에 견제할 법안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조합장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선거 때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슬그머니 물러섰기 때문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갑질이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언급했듯이 전국 곳곳에서 직장 내 갑질은 진행형이다. 이런 전근대적인 문제를 안고 앞으로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장수농협 사건을 계기로 국회와 정부, 그리고 조합원, 지역주민들이 모두 한 마음이 되어 협동조합의 모든 문제를 개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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