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계절 3월에 ‘깨어 보니 후진국’
좋은 계절 3월에 ‘깨어 보니 후진국’
  • 김규원
  • 승인 2023.03.0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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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오늘부터는 밤 기온도 영상(零上)을 보이는 전형적 봄 날씨가 이어진다는 예보다. 비로소 봄다운 봄이 왔다. 이미 길섶에는 봄까치꽃이 파란 얼굴을 보였고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 매화가 피어 봄이 왔음을 알렸다.

나무에는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나뭇가지마다 봉긋봉긋 봄꽃을 피우기 위해, 새잎이 돋아날 준비에 부산해 보인다. 오래지 않아 진달래가 피고 벚꽃 소식도 남녘에서 들릴 것이다. 이렇게 좋은 계절이언만, 국민의 마음은 어둡고 역겹고 힘들어 지쳐간다.

에너지 파동이라 할 만큼 가격이 오르고 전기료와 모든 공공요금이 오른데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월급봉투만 제자리에서 조금도 오르지 못하고 있으니 가계(家計)는 갈수록 어렵다. 온라인으로 뭐든 다 살 수 있으니 구멍가게도 점점 매출이 준다고 하소연이다.

곳곳에서 문을 닫는 가계가 늘고 자영업자들은 매출이 줄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이다. 나아질 전망이 전혀 없는 경제 사정인데 나라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없이 자유경제만 들먹이고 있다.

적자생존(適者生存), 버텨내서 살아남는 놈만 키우는 야생의 사자들처럼, 개인이나 기업도 알아서 버티라는 식의 시장경제 논리가 판을 치는 나라에 우리가 산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던 시절은 옛말이 되었다.

잘 되는 기업을 더 잘되게 법인세를 깎아주고 다주택자의 세금도 줄여주면서 있는 놈끼리끼리끼리 낄낄대며 살아보자는 게 나라의 정책이다. 부자들이 더 많이 벌어야 국민 총생산이 늘고 경제가 탄탄해진다는 그들의 논리에 서민들은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여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정부는 검사왕국으로 치달으며 때려잡기에 열중하며 겁나는 힘자랑을 아직도 계속한다. 군대의 힘으로 협박하던 시절보다 검사왕국이 훨씬 더 무섭다.

이런 가운데 제1043.1절을 맞이하여 유관순 기념관에서 기념행사를 치렀다. 윤 대통령이 그날 행사에서 내놓은 기념사 내용이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과거 대통령들은 3.1절 기념사에서 당시 일본의 만행을 되집어 보며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해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3.1독립운동‘3.1 만세운동이라고 격하하며 지난날 우리가 세계 정세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일본이 국권을 강탈했던 사실을 정당화하듯 말했다.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라고.

우리가 대응하지 못해 일본에 국권을 내주었다는 논리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지화한 것은 정당했다는 일본 아베 총리의 역사관과 같은 맥락을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온 말이 과연 3.1절에 대통령이 할 말인지 귀를 의심케 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라고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 없이 미국과 일본, 한국의 3자 협력을 강조했다.

이어서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우리와 세계시민의 자유 확대와 공동 번영에 책임 있는 기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우리 선열들의 그 정신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일본과 연대하고 협력하는 일이 일본의 총칼 앞에 과감히 일어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3.1독립운동의 정신과 다르지 않다는 망발을 쏟아냈다. 유관순 기념관에서 3.1절 기념행사를 치르면서 대통령이 이런 참담한 말을 하다니.

어쩌면 강제 동원 노동 문제에 대해 일본과 모종의 협의를 마치고 3.1정 기념사를 통해 일본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아닌지 의심케 했다.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대단히 호평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지난 4일 서울에서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발언을 규탄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촛불전환행동5일 오후 5시부터 지하철 서울 시청역과 숭례문에 이르는 중구 태평로에서 윤 정부를 규탄하는 ‘29차 촛불대행진집회를 열었다.

주최측 추산 25,000명이 참석한 이 날 집회에서는 윤석열 퇴진’ ‘윤석열 타도’ ‘김건희 특검등의 피켓을들고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윤 대통령이 과거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일본과 협력만 강조했다고 지적하며 성토했다.

그들은 또, “윤석열은 국민에게 사과하라.”를 외쳤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와 윤희근 경찰청장을 규탄하는 피켓도 보였다. 김건희 특검을 요구하기도 하면서 광화문을 지나 일본 대사관 근처까지 행진했다.

한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는 서울민중행동, 민주노총서울본부 등 143개 단체 관계자 약 150명이 모여 정부를 규탄하는 '서울시국회의'가 열렸다. 이들은 각계 대응으로는 더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시민사회단체들이 공감했다라며 민생, 민주, 평화를 파탄 내는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힘을 모아 투쟁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윤 정권이 노조와 활동가들을 탄압해 민주주의를 실종시키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고 전제하고 정권이 국면 전환을 위해 공안 탄압을 할 때 국민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라고 정부를 성토했다.

민생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도 정적과 반대자들을 잡는 데만 골몰한다. 다 잡아들여 입을 막고 생각의 전파를 막을 생각이라면 착각이다. 세상에는 검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어느 날 돌아보니 우리는 다시 후진국으로 돌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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