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력 정치’에 뒷걸음치는 민주주의
‘완력 정치’에 뒷걸음치는 민주주의
  • 김규원
  • 승인 2023.02.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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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유난히도 긴 겨울이다. 예년이라면 제법 포근할 때가 되었건만, 아직도 영하 5언저리를 맴도는 날씨다. 기온이 오르지 않는 날씨처럼 국민의 마음도 춥고 답답하고 무겁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9개월, 좋은 쪽으로 달라지리라던 기대가 완전히 무너지고 불안만 가중한다.

마치 80년대 초반인 듯, TV 화면에는 국민에 엄포를 놓거나 야멸차 보이는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여 겁을 준다. 9개월 동안에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여러 사건이 터졌지만, 그때마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서툰 정치와 내 편이 아니면 누구든지 피의자로 보는 시각으로 그들끼리 세상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닥을 치던 국정 지지도가 조금 올라가자 그런 정치가 잘하는 정치라고 판단하는 듯 뭐든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검사들이 요직을 두루 차지한 검사왕국에서 큰 범죄도 그들이 덮어 모른 척하면 죄가 되지 않고 사소한 일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면 큰 사건이 되었다. 재벌과 사용자의 시각에서 노동자의 권리주장은 사회악으로 지목되어 척결 대상으로 변했다.

여론 조사에서 아직도 40% 지지를 얻지 못하는 대통령의 행보로는 과하다 싶을 만큼 자신감에 차 있다. 여태 야당과 단 한 차례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고 국민에 전하는 메시지는 늘 일방적이고 단호하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여러분은 지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듯하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과반수의 국민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이다. 그 자신감의 발현은 검찰과 경찰, 국정원까지 완벽하게 장악한 데서 비롯하는 건 아닌지 싶다.

보이는 대로 짐작해보면 대통령을 보좌하는 모든 조직과 개인이 누구도 나서서 이견을 말하지 않거나, 못하는 상황인 듯하다. 오랜 검찰에서 상명하복, 이견을 말할 수 없는 전통 속에서 살아 온 사람들은 누구든 아니올시다를 말하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오늘의 문제를 일으키는 핵심이라고 본다. 수사 이외에 잘 알고 잘하는 일이 없었던 사람이 국정의 모든 일을 결정하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언을 들어야 하지만, 그런 걸 싫어하므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는 상태로 보인다.

회의에서 보고 시간 외에 안건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를 시작하면 대부분 시간을 대통령이 차지하여 의견을 말하고 지시해버린다고 한다. 그러니 더 논의할 수가 없게 되고 흔하게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다주택자의 세금을 깎아준 이유를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가 거의 고스란히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것이 시장의 법칙이라고 했다. 일견 그럴싸하다. 그러나 세금이 가벼워졌으니 집세를 깎아준다는 집주인은 볼 수 없었다.

법인세가 내렸으니 제품 가격을 내린다거나 소비자에게 혜택을 준다는 기업가나 재벌도 없었다.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혹시 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데 쓰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부자의 창고를 열어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몫을 부자들에게 돌리는 건 아닌지. 

이래저래 몇조 원의 세금을 깎아주었으니 그 줄어든 수입만큼 어디에선가 지출을 줄여야 할 것이다. 그 예산이 줄어들 곳은 가난하고 힘없는 계층을 위한 지원 사업 등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말이 없는 사람들이므로.

정치가 서민을 외면하고 재벌과 부자, 정권에 아부하고 영합하는 이들을 위해 변질을 거듭하는 동안 숱한 이들이 점점 고통에 떠밀리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오로지 권력만을 추구하는 정치, 반대 세력을 힘으로 억누르는 정치는 커다란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많은 이들이 새 정부의 행태를 보며 수사권을 틀어쥔 정권의 막강한 파워(?)에 경악했다. 무서운 개가 득시글거리는 집 앞을 지나려면 종종걸음을 치게 된다. 한가하게 걷다가 개라도 튀어 나오면 물릴까 두려워 얼른 지나가려 한다.

어떤 죄도 그들이 아니라면 아니고, 죄가 아닌 듯해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얼마든지 죄인이 될 수 있다. 그 모든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 동안 누구도 그 권위에 주눅들기 마련이다.

최근에 아들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아 물의를 일으켜 재판을 받던 곽상도 전 의원이 무죄를 선고받은 일이 있었다. 시내버스 요금 정산에서 800원을 누락했다고 횡령으로 몰아 버스기사를 파면한 일이 정당하다던 법원이 퇴직금 50억 원은 무죄라고 판결했다.

사회정의는 실종해서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고 모든 일이 힘이 있느냐에 따라 죄우되는 완력 시대에 살고 있다. 제법 민주화가 이루어져 작은 목소리도 들리곤 했던 시대는 과거 어떤 시대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법이 법답지 않게 제멋대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세상,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키는 노동조합이 지대추구(地代追求 : 별다른 노력 없이 일정한 이득을 얻기 위하여 비생산적이고 부당한 활동에 경쟁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로 몰리기 시작했다.

자본주(資本主)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노동자들의 단결행위가 거슬린다는 시각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지대추구로 몰아붙이는 건 아니기를 바란다. 노동자는 그저 사업주가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하는 하수인이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인정해야 한다.

뭔가 왜곡되어 의미가 달라지는 말들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말에서 자주 나오기 시작하면 그에 따른 엉뚱한 오해와 오류가 발생하게 되고 그 파장은 말할 수 없이 커진다. 무서운 개들을 풀어버릴 수 있다고 엄포하는 일도 더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이 원한 대통령은 어지러운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부조리가 통하지 않는 공명정대한 나라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지지자보다는 지지하지 않은 이들에 마음을 기울이고 어둡고 추운 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너그러운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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