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因果應報)
인과응보(因果應報)
  • 김규원
  • 승인 2023.02.2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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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광 섭/수필가
문 광 섭/수필가

건지산은 전주 시내 서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전주역 쪽에서 시작하는 능선은 조경단(肇慶壇)을 안고 돌아 장군봉에 머물다가 한내 방향으로 흘러내린다.

내가 사는 곳은 장군봉 아래 동리인 송천동이다. 잎이 피기 시작하는 봄부터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까진 숲에 가려 볼 수가 없고, 겨울철이나 돼야 드러난다.

하지만 장군봉 산자락은 날마다 대형유리창을 열고 들어와 우두거니 바라만 보는 내게 친구가 돼준다사실 장군봉이야 50여 년이 넘는 오랜 친구지만, 아주 가까이 산 지는 3년쯤 되었다.

20년 살던 집에서 이사를 올 때, 첫째는 성당과의 거리였고, 둘째는 바로 장군봉이 지척에 있어서 결정했다. 손때 묻은 살림이어야 정이 묻어나듯 장군봉 또한 나의 삶과 애환이 묻어나는 곳이다.

20대 후반, 전북대학교 임학과 연습림인 이곳에 올라 인구 30만이 못되던 전주 시내를 내려다보던 기억은 지금도 아련하다. 울창하던 소나무 숲이 솔잎혹파리병으로 고사해 민둥산이 된 뒤, 경계측량을 위해 답사하러 와서다. 산봉우리에 큰 바위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조경단을 호위하는 장군처럼 느꼈다.

1년여에 걸친 경계측량이 끝나고 곧바로 실시한 게 조림사업이었다. 임학과에서 학술 임야로서의 식목과 관리도 있었지만, 전주시와 연계하여 매년 식목행사로 대대적인 나무심기를 했었다.

느티나무,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잣나무, 편 백, 자작나무, 히말라야시다, 목 튤립 등을 건지산 일대에 심었다. 그게 오늘날의 덕진 공원이다. 재산관리업무를 6년 가까이 수행하고, 떠난 지 10년 뒤엔 농대 행정실장으로 부임하여서는 3년 동안 산불방지에 정력을 쏟았다.

전생부터 뭔가 인연이 있지 싶다. 특히, 직접 심은 나무들이 잘 자라서 하늘을 향해 우뚝 선 모습을 볼 적마다 가슴이 뿌듯하다1981년 봄, 조경단 능선 왕자봉 자락인 인후동에서 살기를 시작으로 덕진동 송천동을 오가며 지금까지 40여 년을 건지산 주위에서만 살았다.

반평생을 함께 했으니 친구나 다름없는 사이다. 퇴직 후 60대 중반, 심장 대수술을 마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날마다 장군봉을 오르며 생기를 되찾고, 몸을 추스르는데 크게 덕을 입었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20년 가까이 된다. 비오는 날만 빼곤 사시장철 오르내렸다. 힘이 들기도 했지만, 울창한 숲과 푸른 하늘, 뭉게구름, 풋풋한 내음, 붉게 물든 노을, 탐스런 복숭아, 오색 단풍, 아름다운 새소리, 맑은 공기 등 대자연의 경치와 연주가 어우러지며 만드는 콘서트에 빠져 줄기차게 오르내리고 즐겼다.

아주 작은 일부분이지만 내 손길이 닿았고 땀방울이 묻었을 나무숲을 거닐며, 하느님께 올리는 감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대수술의 후유증을 겪기 이전인 젊은 날에도 분명 이곳을 오르내리며 아름다운 경관과 정취에 흠뻑 빠져 환호성을 지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가 들고 더구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허우적거리며 느끼는 감회는 또 달랐다. ()으로 치면 은은한 빛깔이고, 파도로 치면 잔잔한 물결이면서도 삶의 의미까지 느끼게 하는 감동이다.

또한, 날마다 봐도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감정까지 곁들인 간절함이 묻어난다. 하루! 열흘! 한 달! 일 년! 삼년! 십년을 넘기면서도 항상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이젠 나이마저 망구(望九)에 들고 보니 자신감마저 사라져 자연에서 느끼는 감성도 자꾸만 다르게 바뀐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쉬워서 슬퍼하는 게 아니다. 젊은 날 허투루 살며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후회하시던 일들을 한 귀로 흘리고, 아랑곳하지 않았던 걸 때늦게 깨닫는 어리석음에서다.

뿌리고 가꾸는 만큼 거둔다는 말은 어릴 적부터 귀에 익은 말이다. 한데, 젊은 날 부여된 책무로 나무를 심고 가꾸던 숲에서 훗날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입었으니 이 또한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아니겠는가? 입춘(立春)이 지난 지 오래다. 이제 봄이 저만치 오고 있으리니, 장군봉도 기지개를 펴고 일어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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