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고 세상은 춥고 어수선하고 뭔가 불안한 기운이 스멀거리는 일요일 오전이다. 5일은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사회단체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사건 발생 100일이 되었지만, 만만한 하위직들만 잡아들여 책임을 강요받고 정작 책임을 물어야 할 자들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국민은 의무만 지고 권리는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 선거 때만 주인인 척 받들어 모시는 정치인들의 농간만 실감한다.
이태원 참사도 정권 반대 시위에 경력이 모두 투입되어 인파가 몰리는 상황에 대처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정치적 참사였다. 그러한 정황이 분명한데도 그에 대한 말조차 삼가는 모습이고 피해자 유족들은 누군가 사과라도 듣고 싶어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제 발로 걸어 나가 죽은 자식을 단속하지 못한 부모’라며 비난하는 자들, 그런 참사에 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왜 사과해야 하느냐고 외려 대드는 무리가 이 시대를 좌지우지하는 여당이고 정부의 요직에 있다.
어떤 참사 유가족은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서바이벌식 생존을 해야 하냐?”라고 규탄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듯 저는 이번 10.29 참사에서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이렇게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하루하루 생명은 운에 맡기며 살아가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서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번 참사가 왜 발생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반드시 되짚어 봐야 한다. 참사의 원인 규명은 희생자의 죽음에 대한 의문점 해결에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이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그는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성역 없는 진상 조사와 참사에 대한 원인 규명”이라며 “그날 이태원역 1번 출구 골목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녁 먹고 올게’라며 나간 동생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는지 알고 싶다. 동생이 떠난 이유와 경위를 알아야 진정한 애도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전주에서 올라와 이태원역 1번 출구 옆 해밀톤 호텔에서 밤을 보냈다는 이정녀(51)씨는 ‘국가도 없고 대통령도 없지만, 유가족분들 곁에는 국민이 있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이 씨의 손을 꼭 붙잡은 11살 아들도 반대편 손에 ‘유가족분들 힘내세요 국민이 함께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 씨는 “아름다운 청년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도 나라와 대통령은 관심도 갖지 않는 것 같다. 유가족분들이 너무 마음 아파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앞에 소개한 내용은 세계일보의 기사다. 어느덧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은 반정부 투사로 나섰다. 슬픔에 잠긴 그들을 투쟁 현장으로 안내한 장본인은 바로 정부다. 슬픔 가득한 그들의 가슴에 분노의 불길을 심어준 건 여당 인사와 고위 공직자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나 조직이 없다. 아무리 잘못돼도 반성하며 사과하지 않는다. 내가 직접 가해한 일이 아닌데, 내 손으로 직접 저지른 일이 아닌데 왜 사과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되묻는다.
아니, 직접 입 밖으로 내뱉은 말도 수하들이 알아서 적당히 돌려대며 그 말을 사실대로 보도한 언론을 찍어 나무라고 고발한다. 함부로 사실 보도하면 혼난다는 엄포에 기자의 손길이 자판 위에서 멈칫거리기 일쑤고 정면을 향하지 못하고 우회하기도 한다.
아프게 찢어진 상처를 어루만지고 봉합하여 아물게 해야 할 정부 여당이 그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쓰라리고 덧나게 했다. 어떤 일이든 정부에 대들거나 비난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독재 시대의 망령이 차츰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이견을 말하고 비판하며 조금씩 달라져 온 민주주의가 다시 1970년대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그 시대의 망령이 살아나듯 지난 2월 2일 박정희의 딸 박근혜 생일날에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대거 대구에 몰려가 축하하고 생일상을 바쳤다는 어처구니없는 기사도 있었다.
세상이 이미 그 시대의 인물과 사고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사례다. 군사독재 시대보다 검찰 권력이 세상을 장악한 오늘이 더 견디기 어려운 시기라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군대는 조금 멀리 있었지만, 경찰과 민간인들을 앞세운 검찰 권력은 바로 내 앞에 있다.
이런 국민 불안 속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주요 성과 10가지’를 정리한 20초짜리 영상을 2월 한 달간 전국 146개 옥외 전광판에서 보여준다고 한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는 국정 기조 아래 10가지 성과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나온 영상에는 이란 적국 발언으로 말썽 많았던 UAE 방문에서 국부 펀드 40조 원 투자 등 경제 성과를 위시하여 우주 발사체 2차 시험비행 성공, K방산 수출 21조 원 등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 가운데 2022년도 사상 최대 수출 달성이 거론되었으나 사실상 윤 정부 아래서는 지난 10월부터 반도체 수출 감소로 전체 수출액이 감소하고 있고 새해 첫달 수출은 더욱 줄어든 상황이다. 이후 전망도 좋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정치, 지난 독재 시대의 우격다짐 정치가 그 시대의 사고방식과 사람들에 의해 재 등장하는 현상은 지극히 염려스럽다. 마치 다수 국민의 뜻인 양 호도(糊塗)하여 나라를 일부의 입맛에 맞게 이끄는 짓은 위험하다.
정부 인사나 여당 대표 선출에까지 대통령의 힘이 좌지우지하는 현상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말로만 국민을 앞세우지 말고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헤아려 바른 정치로 돌아가기를 간곡히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