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사자성어 놀음
의미 없는 사자성어 놀음
  • 김규원
  • 승인 2022.12.15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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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흥청거리는 분위기가 점점 가열되고 있다. 이른바 연말특수를 기대하는 시기이지만, 예년 같지 않다고 푸념하는 업소들의 반응이다. 긴 코로나 터널을 지나오면서 아직도 조심하는 분위기이고 사람이 모여 떠드는 분위기가 낯설다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중고 속에서 기업도 어렵고 개인도 실질소득이 줄어 모임도 간단한 식사 자리가 대부분이라는 게 중론이다. 어려움 속에 뭐 하나 희망적인 전망이 나오지 않는 어려운 시기를 현명하게 넘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파고를 느끼지 않는 곳은 각급 행정기관이다. 나랏돈으로 살림을 꾸리는 행정기관들은 내년 예산도 평소와 다름없이 편성하고 3중고 여파가 가장 적은 곳이다. 특히 단체장들은 공무원들을 활용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자치단체를 운영할 수 있다.

저마다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퍼포먼스를 생각하고 갖은 방법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심어주기 위해 마음을 쏟는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재선하거나 또 다른 선출직에 도전할 수 있으므로 하찮은 성과라도 부풀려 선전한다.

그런데 연말께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시기가 되면 시군마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택하여 발표하고 그럴듯한 결심을 한 듯 선전한다. 연말에 대학교수 회의에서 나라 정치를 비판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사자성어다.

그럴싸한 문구들을 찾아 발표하고 어떤 시군에서는 크게 써서 청사에 붙이기도 하지만, 행정태도나 성과를 보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게 대부분이다. 아이들이 새해 아침에 전교 1을 써서 붙이고 맨날 나가 놀기만 하는 형국이다.

대학교수 회의가 선택하는 사자성어는 지난 1년간 정치 흐름을 꼬집어 위정자에게 경고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정치를 해왔으니 새해에는 달라져야 한다는 점잖은 충고라고 할 수 있다. 반성하라는 글귀다.

단체장들이 그런 의미에서 냉정하게 지난 1년간의 성과를 분석하고 반성하는 글귀를 선택하여 붙여두고 고쳐보겠다는 의미의 글을 써 붙인다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시군마다 거창한 사자성어를 찾아내 선전만 하고 행정은 그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간다.

지난 연말과 연초에 설정한 사자성어를 얼마나 성실하게 지키거나 이행했는지 성과는 전혀 생각지 않고 또 그럴싸한 사자성어를 찾는 장난 같은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사자성어를 내걸어야 단체장의 품위가 높아지는 건 아니다.

침만 멀리 뱉으면서 하는 짓은 코앞도 살피지 못하는 행정을 하는 건 아닌지 반성할 일이다. 그럴 시간에 어려운 주민이 추위에 떨고 있는지, 갑자기 어려운 사정에 닥친 기업이 활로를 찾지 못해 허둥대는지 살펴보는 게 좋은 단체장이다.

단체장은 목민관(牧民官)이 아닌 국민의 머슴이라는 위치를 새삼 명심하고 빗자루를 들어 더러운 곳을 쓸고 주인들이 불편한 일이 무엇인지 살필 때다. 사자성어 놀음은 자신의 안방에서 혼자 결심으로나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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