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근본은 국민
정치의 근본은 국민
  • 김규원
  • 승인 2022.12.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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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움찔하더니, 카타르 월드컵 16강 소식에 날씨마저 풀린 듯했다. 그러더니 다시 영하로 내려섰다. 사실 추위가 늦게 시작된 셈이지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는 아니다. 나라 분위기가 뭔가 조이는 듯해서 그리 느꼈을 것이다.

화물연대가 파업하자 업무개시명령이 떨어지고 그에 따라 화물연대의 저항 운동이 가열되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주유소에 기름이 떨어지고 기업과 건설 현장의 자재가 없어 가동이 어렵고 현장이 멈추는 결과로 이어졌다.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대응하는 정부 여당의 지지율이 올랐다고 신바람 난 언론도 있다. ‘탐사팀의 한동훈 장관 취재를 두고 법을 지키지 않으면 지킬 때보다 훨씬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법치가 확립된다.”라는 대통령의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떠받드는 언론도.

법치(法治)’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법률에 의하여 나라를 다스림. 또는 그런 정치라고 적혀 있다. ‘법치주의사람의 본성을 악하다고 생각하여 덕치주의를 배격하고 법률로써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사상.’이라고 풀어놓았다.

덕치(德治)든 법치든 필자의 생각에는 그 ()’라는 글자에 거부감이 크다. ‘다스릴 치라는 그 글자는 이 시대에 쓰는 글자가 아니다. 군주의 나라이던 시대에 만물과 백성이 자기 것이므로 잘 다스리는 일이 중요했다. 그래서 군주의 행위는 모두 치()였다.

 

국민이 빌려준 권력은 국민을 위해서

 

우리는 일제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고도 아직 그들이 심어둔 조악(刁惡)한 의식구조와 그들을 숭상하는 친일 세력의 잔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조직에서부터 법률해석, 검사제도와 재판의 판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것을 차용하고 배운 대로 운용해 왔다.

최근에 소위 검수완박을 통해 수사권이 경찰에 넘어가긴 했어도 특수라는 이름으로 검찰의 수사는 외려 강화된 느낌이다. 일본 식민지 검사의 전통이 물려 내려오다가 개선되었다고 하나 그들의 세상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강압적이다.

더구나 그들이 수장이던 윤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 나라의 법은 완전히 날()이 섰다. 곳곳에 검사와 율사(律士)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경찰마저 완전히 장악하여 도산검림(刀山劍林)에 든 듯 자칫하다간 한 무더기가 뭉텅 잘려 나갈 듯이 위태로운 느낌이다.

공자(孔子)가 태산 옆을 지나가는데 어떤 부인 하나가 무덤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는 수레 앞턱의 가로나무를 잡고 듣고 있다가 제자인 자로(子路)를 시켜 그 연유를 묻게 했다. “부인이 우는 것이 심히 깊은 근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인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죽었고, 남편이 또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아들이 또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 “왜 떠나지 않았습니까?” 하고 공자가 묻자 부인이 대답했다.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제자들아, 명심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예기(禮記) 단궁(檀弓)〉》, 공자가어(孔子家語) 정론해(正論解)〉》에 나온다. 흔히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경구(警句)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가혹한 법으로 다스리는 정치가 국민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잘 그려내고 있다.

오늘의 정치는 군주의 정치가 아니다. 나라의 권력은 오직 국민에게 있을 뿐이다. 국민이 모아준 권력은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 위임받은 권력이므로 오로지 국민의 뜻에 따라 쓰여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쓰겠다고 약속하고 받은 권력이므로 약속대로 써야 옳다.

 

모든 일은 주인 뜻대로

 

헌법을 수호한다는 약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1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모든 공직자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일은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을 위해 모든 행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말단 공무원에서 대통령이 이르기까지 누구도 그 원칙을 벗어난 행위를 할 수 없다. 맡겨진 임기 동안은 그 권력이 내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더구나 국민의 반대 여론이 있다면 당연히 수용하고 주인의 뜻에 따르는 게 순리다.

국민은 다스릴 대상이 아니다. 다스릴 대상을 찾는다면 휘하 공무원 정도일 듯하다. 그들도 업무 측면에서 공적인 다스림의 대상이지 개인의 인격이나 생활에서는 국민이므로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

국민을 다스릴 대상으로 생각하는 건 지난 시대 독재 시대의 발상이다.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선출된 공직자는 누구나 예외 없이 국민의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국민을 다스릴 대상으로 아는 선출직이나 임명직 공직자가 있다면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늘 주인의 심기를 살피는 충직한 머슴이 이 시대의 올바른 지도자이고 국민이 바라는 일꾼이다. 손에 들어온 권력이니 맘대로 하겠다는 지도자는 모두 실패했다. 독재 폭력에 길든 노인들이 묵은 시대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국민의 지지로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최근 반년 동안 나라 정치가 역주행을 거듭하는 현상에 많은 사람이 놀라워하며 지켜보고 있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위태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무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법이라는 몽둥이는 도둑을 잡는 데 쓰는 도구이지 다스리는 채찍이 아니다.

법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규범이다. 법이 혹시라도 국민을 옥죄는 사슬이나 겁주는 모양새로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 법은 두려운 존재가 아닌 우리가 안심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울타리 역할로 쓰여야 한다. 주인이 거북해하는지 살피는 법 운용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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