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잇 방망이의 부활
다듬잇 방망이의 부활
  • 김규원
  • 승인 2022.12.0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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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종

 

백 금 종(수필가)
백 금 종(수필가)

  어둑한 방구석에 다듬잇방망이 한 짝이 놓여 있다. 어머니의 손길이 멀어진 후 오랫동안 침잠의 늪에 빠졌던가 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 마음 달래며 이제나저제나 주인을 기다렸겠지. 이방인의 침입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푸른 결기까지 품고 있다. 살며시 쓰다듬어 보았다. 닳 대로 닳아 제법 매끈하다. 어머니의 고달픈 삶의 결이다.

  ‘도닥도닥, 또닥또닥.’

  다듬잇방망이 소리가 들려왔다.

  ‘얘야, 얘야. 그만 두들겨라. 이만하면 됐다.’ 할머니의 인자한 목소리도 그 속에서 들렸다.

 

  어머니는 옷감이나 이불감을 손질하려면 으레 매끈한 방망이와 다듬잇돌을 찾았다. 흰 물이 나도록 세탁한 후 풀 먹여 꼽꼽해지면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렸다. 명절이 다가오거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면 다듬곤 했다. 휘영청 달 밝은 밤 풀벌레 벗 삼아 다듬이하면 그 밤은 애련한 가락에 젖어 깊어갔다.

    어머니와 큰고모가 차분하게 마음 맟춰 두드리는 모습은 화목한 우리 가정의 한 폭 그림이었다. 달은 중천에 걸리고 멀리서 멍멍개 짖는 소리는 아련한데 격자무늬 문 창살에 비치는 다듬이질 모습은 동화 같은 우리 집 정경이었다. 어머니가 강하게 두드리면 고모는 약하게, 고모가 강하면 어머니는 약하게 두드리며 올케 시누이 간에 호흡을 맞추어 갔다. 각각 두 개씩 네 개의 방망이가 한 번도 겹쳐지지 않게 두드리는 것은 두 마음이 한마음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어찌 벽이 있고 옹이가 있으리? 드디어 강하게 강하게 두드리며 피날레를 장식하면 얼굴은 볼그레 꽃물이 들고 옥양목 옷감은 하얗게 반질반질 윤이 났다.

  다듬이 소리는 우리의 가락이다. 우리의 멋을 품은 소리이다. 화평한 가정의 울림이다. 거친 마음을 다듬어주고 구김살을 펴고 심금을 울리는 메아리다. 가까이 들어도 정겹지만, 멀리서 들을 때 아련한 감상에 젖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다듬이 소리는 여린 내 마음을 들썩이게 하는 파도와 같았다. 내면에 깊이 잠자고 있는 감성들을 무지개처럼 펼쳐주었다.

 

  먼저 가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며 한 짝을 버린 것일까? 생의 파고를 넘을 때마다 긴긴밤 잠 못 이루고 다듬잇돌이 으스러지도록 두드리다 보니 한 짝이 동강 났을지도 모른다. 기쁠 땐 함께 웃고 슬플 때 마음을 주고받으며 눈물도 흘렀겠지. 가슴의 옹이를 녹여내려 부르던 망부가(望夫歌)도 제 몸 깊이 새겨 두고 있으리라.

  방망이가 조심성 없는 아들을 채찍이라도 하듯 말썽을 부린 적도 있다. 만남의 설렘이 가시기 전에 사고를 내고 말았으니 운우의 정을 쌓아야 할 달콤한 밤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을 테다. 상처 부위는 나았으나 멍든 발톱은 평생 지워지지 않은 흔적으로 남았다. 아버지가 휴가차 오던 날 장난삼아 놀던 다듬잇방망이로 발등을 내리친 소동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나보다 더 아파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 화석으로 남아있다.

  요즈음은 다듬이질 할 일이 없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자니 방망이의 발싸심이 눈에 어렸다. 그의 소임은 두드리고 다듬는 것이 아니든가? 고향 집 텃밭에서 종일 일하였거나 산행이라도 한 날이면 으레 종아리를 두드리거나 위아래로 문지르기를 한다. 머리가 무겁고 지끈지끈할 때는 목을 두드린다. 그런 때에는 지켜야 할 규율이 있다. 달래가면서 가볍고 리드미컬하게 두드리는 것이다. 칼을 착하게 사용하면 편리한 생활 도구이나 불량하게 휘두르면 흉기로 변하듯 방망이도 그 특성을 살펴 적절히 사용해야 그가 진가를 발휘해 준다. 신명 난 방망이와 한참을 수고하면 어머니가 따스한 손길로 쓰다듬어 주듯 조금 부드러워진다.

 

  방망이를 본 아내의 안색이 밝아졌다. 김장철 북어를 두드리고, 한여름 입맛이 가실 때 별미인 칼국수 만들 때를 생각해서란다. 그보다는 풋풋한 학창 시절 동아리에서 배웠던 방망이 난타가 그립다며 자못 흥분한 표정이다. 푸른 꿈을 허공에 묻어두고 생활의 강을 건너야 했던 그녀의 심사를 어찌 다 가늠하리? 퇴화해 버린 리듬의 싹에 다시 새순이 돋아나길 은근슬쩍 바랐다.

  그러나 이제는 방망이를 곁에 두고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반추하고 본받아야겠다. 더 나아가서는 어머니가 결 고운 옷감을 위해 밤샘을 두드렸던 것처럼 방망이로 나의 구겨진 마음을 가다듬고 싶다.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고 매사에 감사하며 즐겁게 하루를 갈무리해야겠다. 남을 배려하며 낮은 자세로 살아간다면 의미 있는 일이지 않겠는가? 작은 몸짓 하나가 누군가에겐 그늘이 되고 우산이 된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이지 싶다.

  어머니가 남겨주신, 방망이 한 짝, 내 마음 밭에 빛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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