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홍시
  • 전주일보
  • 승인 2022.11.2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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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감나무 실가지 끝

홍시 하나
늦가을 햇빛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지난여름에게 미안해서이다

한번은
진지하게 살아야 했었는데
한 생을
사는 것 같이 살아야 했었는데
그 좋은 한 철을
낮잠으로 보냈으니
수고 다음에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
삶에 부끄러운 이 가을
남은 살 몇 점을 
산새들에게 내주며 얼굴 붉힌다
삶이란 이렇듯
얼굴 붉히며 위로받는 것인가

감나무는 거름을 주지 않아도 저절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감꽃이 피면 아이들은 떨어진 꽃을 주워 먹기도 했다. 한여름에는 땡감을 물에 우려먹고, 감이 하나 둘 익기 시작하면 늦가을 시골 정취를 한껏 치장하는 것은 감나무다. 잎사귀를 다 떨구어 낸 가지에 붙은 붉은 감은 가을 하늘을 독차지해도 누구 한 사람 시비를 걸지 않는다. 마지막 남은 홍시는 까치밥이 되어주기도 한다. 늦가을 아침, 서리 내린 감나무에서 홍시를 쪼아대는 까치는 한 폭의 동양화다. 홍시紅枾는 속살이 붉고 연한 감으로 연시軟枾라고도 한다. 오래 익은 단계의 감이다. 표면은 매끄럽고 약간의 광택이 있으며 촉감은 말랑말랑하다. 조직이 액상에 가까울 정도로 물러 온전한 모양으로 수확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시중에 나오는 홍시들은 덜 익은 감을 수확한 뒤 처리를 거쳐 익혀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홍시는 그냥 먹어도 맛있다. 냉동실에서 단단하게 언 홍시를 흐르는 물에 손으로 껍질을 문지르면 껍질만 벗겨지고 언 속살만 드러난다. 이것을 잘라먹거나 통째로 먹으면 진짜 맛있다. 또한 냉동실에 얼린 다음 살짝 녹여 먹으면 한여름에 먹는 아이스크림이나, 달콤한 셔벗Sherbet 느낌이 난다. 솜씨가 좋은 사람들은 손으로 껍질을 살살 까서 속살을 드러내게 한 다음 먹기도 한다. 홍시의 물러터진 구조는 단번에 깔끔하게 먹기는 좀 어렵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요즘은 감나무 아래 홍시가 지천으로 깔려 있어도 주워 먹는 사람들은 없다. 깨지지 않은 홍시를 아이가 주워 먹으려고 하면 엄마는 기겁하며 홍시를 빼앗아 던져 버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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