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에서 만난 스승
시내버스에서 만난 스승
  • 김규원
  • 승인 2022.11.0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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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규 풍/수필가
최 규 풍/수필가

선악이 개오사(善惡皆吾師)’는 다른 사람의 잘한 일을 보면 나를 가르쳐 준 것이요, 남의 잘못에 나를 살펴볼 뿐 남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내가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이 곧 나를 가르친 스승이라는 말이다. 세상의 착한 일이나 악한 일이 모두 자기 수양의 거울이 되니 세상사를 가볍게 보지 말고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말이다.

시내버스로 복지관에 갔다. 기사가 전화하느라 우회전해야 할 데를 직진하였다. 승객들이 이 길이 아니라 했다. 사거리 가운데에서 좌로 270도 회전하였다. 다른 차들이 멈추어 있고 다행히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없었다. 겁도 없이 불법 유턴으로 손쉽게 차를 돌렸다. 운전을 잘하니 가능한 일인가? 아니면 시민을 태웠으니 허용할 일인가?

 

시내버스 기사는 많은 사람을 태우고 안전하게 이동시켜주는 고마운 일을 한다. 대중의 목숨을 책임지는 일이니, 안전이 최우선이다. 한순간의 방심도 금물이다. 사람이 죽고 다치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전화를 하느라 길을 깜빡하여 차를 돌렸다. 운전하면서 통화를 하다가 착각한 것이다. 큰일을 당할 뻔했다. 사고가 나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다. 바른길로 돌려서도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이어나갔다. 뒤에서 듣자니 중요한 일도 급한 일도 아닌 사소한 일이다. 다른 버스의 친구 기사와 심심풀이다. 이런 기사는 처음이다. 기사분들은 대부분 삼가고 조심한다. 그만 전화를 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승객들을 무엇으로 보는지 오만불손하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못마땅했다. 한마디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침 이른 시간인데 나서고 싶지 않았다. 기사가 내 말에 불쾌하면 하루 운행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그 불쾌감은 고스란히 승객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곧 전화를 끄겠지 하고 참았다.

전화는 내 마음과 달리 이어졌다. 손님이 타면 앉기도 전에 출발하여 넘어질 듯 불안했다. 승차감이 사나웠다. 어서 내리고 싶었다. 무슨 전화를 저리 오래 할까? 그때다. 인내심이 깨졌다. 기어이 불평이 터져 나왔다. 젊은 여자다.

기사님, 좀 조용히 가면 안 돼요?”

당당하였다. 목소리가 불쾌감을 애써 누른 듯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무게가 실린 당찬 말이었다. 내 마음이 시원하면서 기사가 어떻게 반응할지 듣는 귀가 긴장을 하고 은근히 소름이 돋았다. 기사가 화를 내어 백미러로 돌아볼 줄 알았다. 심하면 차를 세울 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니었다. 무안했는지 기사가 전화를 끊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것일까? 버스 안이 정적에 싸이고 버스는 처분해졌다.

'미안합니다.' 딱 한 마디면 승객들이 너그럽게 풀리는데 그게 어려운지 말이 없다.

버스를 운전하면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려면 온전한 생각으로 운행에 몰두할 일이다. 기사석의 뒤쪽 안내판에 전화는 제발 삼가세요가 무색하다. 이 버스는 운전석 앞에 붙여야 맞다.

 

오늘 일을 겪고 타산지석으로 나 자신을 반성하였다. 내 잘못을 드러내어 용서를 구하기에 주저하며 살았다. 용기가 없고 비겁하며 의기소침한 일이다. 모두가 불쾌감을 참고 견디는데 당당히 나서서 조용히 가라고 외친 여인은 참으로 멋지고 장하다. 그른 것을 그르다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외쳤다. 나는 나서기를 주저하고 참고 있었으니 참으로 나약하고 못난 사람이다.

'정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기로써 할 것이요', ‘부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기로써 아니할 것이요’* 성자의 말씀이다. 나는 부당한 일에 몸을 사리고 입을 다물었다. 전화를 끊고 운전을 잘하라고 질책한 여인은 참으로 똑똑하고 정당하였다.

 

세상에는 스승과 선생이 있다. 세상에 먼저 태어나 나이가 많으면 선생이다. 요즘은 누구든지 상대방을 높여서 선생이라 부르기도 한다. 본래는 일찍부터 도를 깨닫고 덕행을 하는 이나,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이를 선생이라 하였다. 스승은 선생과 어원이 다르다. ‘훈몽자회에 보면 절에서는 스님을 스승이라 한다. 스승은 곧 사()이고 사승(師僧)에서 온 말이다. 고려 시대부터 쓰던 말이다. 오늘날 스승의 의미는 변해서 단순히 지식만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참된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는 정신적인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 삼십여 명의 승객 중에 다들 침묵하고 있는데, 홀로 나서서 기사의 잘못을 밝히고 당당하게 멈출 것을 요구한 젊은 여자는 정당한 말로 정의를 실천하였으니 나를 가르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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