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풀 수 없는 슬픔과 아픔
법으로 풀 수 없는 슬픔과 아픔
  • 김규원
  • 승인 2022.10.3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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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세상이 깜짝 놀라는 일이 벌어졌다. 멀쩡한 젊은이들이 미국 문화를 추종하여 생겨난 핼러윈 축제에서 서로 밀치다가 눌리고 깔려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오후 3시 현재 사망자 151명에 부상자 82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이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이라고 한다. 외국인도 일부 사망하고 부상자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로 3년간 열리지 못했던 이태원 행사들이 줄줄이 발표되면서 금요일부터 인파가 몰리기 시작해 이날 기어이 사고가 터졌다.

4미터 미만 폭의 좁은 경사로 골목에서 인파가 밀리자 뒤로 물러나라는 말에 일부는 물러나고 뒤로밀어로 알아들은 뒷사람들이 앞으로 밀어 사람들이 넘어지기 시작하면서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경위가 그럴듯해 보인다.

젊은이들이 외부의 물리적인 원인이 없이 길거리에서 움직이다가 300명 가까이 죽거나 다쳤다. 축구장 등 경기장에서 갑작스럽게 밖으로 나가려다가 압사 사고가 난 일처럼 분위기에 휩쓸린 젊은이들이 모여 즐기려다 참사를 부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을 누구라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3년간 발이 묶여 있던 젊은 사람들이 모처럼 광란의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 들뜬 분위기에 모여든 것이 원인이랄까? 분출하지 못한 욕망이 풀린 거리두기와 핼러윈이라는 복합적 원인에 폭발한 것일까?

그 숱한 젊은이들의 사고 소식을 보며 한편으로 생각난 것은 이 사건에는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다는 점이다. 또한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행사를 주최하여 사람을 불러모은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 엇갈린 움직임을 보이다가 발생한 우연한 사고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 사랑하는 사람, 친구, 형제, 동료를 잃은 슬픔이 넘쳐 흐르는 주말 아침이다. 어쩌다 이런 사고가 난 것일까? 가해자도 없고 원인도 불분명한 이일이지만, 그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데에는 분명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좁은 골목에 십만여 인파가 서로 떠밀려 가다가 누군가 유명인이 나타나자 한꺼번에 사람이 몰리고 앞에서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에 뒤로를 외쳐댔다. 이 말을 뒤에서는 장난처럼 밀어로 알아들어 앞으로 밀자 경사로 중간에서 사람이 넘어지고 비명이 들리면서 아수라장으로 변한 듯하다.

젊은이들의 한때 치기(稚氣)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픈 사고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해서 앞으로 골목길에서는 앞사람과 몇 센티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법을 만들 수도 없고 경찰이 이태원 골목에서 사람을 흩어지게 할 수도 없다.

아마 지금쯤 대통령실과 검사님들은 퍽 답답할 것이다. 누굴 잡아서 책임을 씌우려 연구해봐도 마땅한 방법이 없지 싶다. 누군가 유명인사가 나타났다는 그를 붙잡아 군중심리를 선동했다고 몰아세울지 모르지만 터무니없는 일이다.

막강한 수사와 기소권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조금 느낄지도 모르겠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슬픔을 가누기 어렵다면서 정부는 오늘부터 사고 수습이 일단락될 때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국정의 최우선순위를 본건 사고 수습과 후속조치에 두겠다고 했다.

더하여 “무엇보다 사고 원인의 파악과 유사 사고 예방이 중요하다. 본건 사고의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향후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행안부 등 관계 부처로 하여금 핼러윈 행사뿐만 아니라 지역 축제까지 긴급 점검을 실시하고, 질서 있고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본건 사고의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향후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라는 말은 얼핏 검사의 논고처럼 들리기도 한다. 결코 법 조항으로 풀 수 없는 젊은이들의 혈기와 문화적 분출을 이해하지 못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진 것이 법으로 해결하는 수단뿐이니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수사(修辭)라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늘 북적거리는 이태원, 홍대앞 근처를 아예 지도에서 지워버리기 전에는 세계의 명소인 그 곳의 문화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정치가 현실과 너무 멀리 있다는 걸 실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많은 인명이 희생된 일에 이죽거리는 듯한 글을 쓰는 게 퍽 죄스럽지만, 정부가 생각하는 방향이나 대통령의 말이 너무 황당해서 장황한 사설을 늘어놓았다. 나라 정치의 모든 것을 법으로 풀어보려는 생각이 답답해서다.

30일 오후 1230, 지금도 경찰이 수사본부를 설치해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원인 제공자를 찾는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누구에게 덤터기를 씌워 엄중한 사태의 책임을 물으려는 자체가 넌센스다. 위에서 철저하게 조사한다니 하는 척이라도 하겠지만.

누군가 주최한 행사가 아니고 핼러윈 데이에 핼러윈 골목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그러다 우연히 사람이 한꺼번에 밀려 발생한 사고다.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의도로 누군가 해코지를 한 일이라면 범인을 가려야 할 터이지만, 자연발생적 사고에 불과하다.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부상자의 치료는 정부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국가의 국민 안전 보장 책임 범위 내에서이므로 미약한 수준일 것이다. 시민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사람이 밀집하는 곳이 위험하다는 경각심을 배우고 조심하는 학습을 한 셈이다.

아까운 젊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가까운 모든 이들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며 위로를 드린다. 부상한 이들도 하루빨리 쾌자하기를 빈다. 삶은 늘 위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지만, 오늘 일은 너무 황당하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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