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는 노인들
힘 있는 노인들
  • 김규원
  • 승인 2022.10.27 13: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용 만/ 수필가
이 용 만/ 수필가

10월, 맑고 높은 하늘에 흰 구름 몇 점 둥실 떠가는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다. 그 아래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단풍들이 손을 내밀기 시작하는 한가한 공원길이다.

! 또르르르.” 갑자기 깡통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저만큼 앞서가던 젊은이가 마시고 난 캔을 내던진 것이다.

저 녀석 하는 꼬락서니 좀 봐. 저렇게 공중도덕을 모르니 장차 사회나 국가를 위하여 좋은 일 하겠어? 장래가 걱정되는구먼.” 여기저기서 투덜대는 소리가 들린다.

저것 좀 봐”  같이 가던 사람이 가만히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나지막하게 말을 꺼낸다. 아까 젊은이가 던지고 간 깡통을 뒤따라오던 할아버지가 주워든 것이다. 그리고는 조금 걸어가 쓰레기통에 던진다. 지팡이를 짚은 나이 많으신 분이다.

!” 쓰레기통에 깡통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깡통을 공원 바닥에 던지는 소리와 주워서 쓰레기통에 던지는 소리의 감각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저만큼 걸어가고 있는 젊은이의 발과 할아버지의 손을 번갈아 바라본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젊은이의 발과 바짝 마른 할아버지의 손 중 어느 쪽이 힘이 있는 것인가?

어느 시골길을 걸어가던 아낙네가 달리던 직행버스를 보고 손을 들자 버스가 멈춰 섰다.

이 버스가 직행버스요 군내버스요?” 직행버스가 서는 게 못마땅한 젊은이가 운전기사를 향해 소리친다. 그러자 나이 지긋하신 노인이 한 마디 한다.

거 짐도 있고 하니 태워서 같이 갑시다.” 젊은이의 불평과 노인의 배려의 말 중 어느 쪽이 힘이 있는 말인가.

시내버스 바닥이 더럽다고 불평하는 젊은 사람과 노인을 태워주어서 고맙다고 운전기사에게 인사말을 건네는 사람 중 누가 힘 있는 사람인가.

세월 가고 늙으면 육신의 힘이 빠진다고 한다. 노인을 힘이 없다하여 늙은이라 한다. 그러나 어찌 노인이라 하여 힘이 없다 하리요. 세상에는 힘 있는 노인들이 많이 있다거리에서 비를 들고 청소를 하는 노인들,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노인들, 시멘트 바닥에 붙어 있는 껌을 떼고 있는 노인들, 공원에서 오물을 줍고 있는 노인들그들을 누가 힘없는 노인들이라 하리요.

젊은 사람들이 한 시간도 업으려 하지 않는 아기를 한나절 내내 업고 있는 할머니, 여름철에 아기 배 뜨거울까봐 꼬옥 안지 않고 사이를 띄워서 어르고 있는 저 할머니, 누가 그들을 힘없는 사람이라 하리요.

옛이야기에 중국에서 트집 잡기 위하여 보내 온 어려운 문제를 풀지 못하여 곤경에 처해 있을 때에 그 문제를 풀어준 사람이 고려장을 피해 마루 밑에 숨겨둔 나이 많은 부모였다 한다. 그가 어찌 힘없는 사람이리요고려장 시키 려고 늙은 부모를 지게에 지고 가서 산속에 버리고 돌아가는 아들에게 내가 나뭇가지를 뚝뚝 잘라 던져 놓았으니 그것을 보고 길 잃지 말고 잘 찾아가라고 일러주는 노인이 어찌 힘없는 사람인가.

몸이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어도 집안에 기강이 서 있었는데 할아버지 돌아가시자 집안사람들이 중심을 잃고 흩어져 버렸다는 집안도 있다. 또 아버지 살아계실 때에는 형제간의 우애도 좋았는데 돌아가시자 형제간의 우애가 깨져버렸다는 경우도 있다.

세상의 역사가 젊은 사람들에 의해 이끌어가는 것 같지만 어른이 없으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만다전에는 동네에서 큰일을 하려면 나이 드신 어른들께 여쭈어보고 하였다. 시골에서는 면장이나 지서장이 부임을 하면 동네 어른들부터 찾아뵈었다.

그 사람 참 싹수 있는 사람이구만.” 그러면 낙점을 받아서 일을 수월하게 풀어 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동네에 어른들이 없다. 어른이 없는 게 아니라 어른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어른들도 전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말해 보았자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훈수 한 번 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더 큰 걱정은 나라에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 잘못해도 야단을 쳐줄 어른이 없으니 맨날 시행착오이고 시끄럽기만 하다. 어른의 야단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힘을 잃을 때 사회나 국가도 힘을 잃는다.

그래도 노인이 힘을 잃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노인을 존경하지 않고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지만, 노인은 사회의 기둥으로 바로 서 있어야 한다. 노인이 힘을 잃지 않고 있어야 사회나 국가가 힘을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