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바우래요"
"감자바우래요"
  • 김규원
  • 승인 2022.10.13 14: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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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숙/수필가
김 영 숙/수필가

그리움의 거리로 지척이거늘/ 자동차로 서너 시간 달려야/ 겨우 비행기 재 넘는다// 마음은 더 급했는지/굽이굽이 길을 잡아당기며/첩첩산중 접고 펴며//골을 따라 오르고 내리며 도착한/ 큰너그니재 아리랑 고개 능선 자락/부모님 누워계신 곳에는// 흐릿한 시간 속에 갇혀/반기는 이 없고/하늘만 속절없이 높고 푸르구나

강원도가 고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감자바우네요?" 하고 되묻는다. 나는 감자처럼 순박한 애칭이라 여기며 종종 스스로 감자바우라고 떠들고 다니기도 한다. 그런 감자바우가 오랜만에 정선 아리랑의 동해 푸른 물결 손 흔드는 소금 고개란 구절의 그 소금 고개 중의 하나인 큰 너그니재와 작은 너그니재를 숨 가쁘게 오르고 넘어서 부모님을 뵈러 나섰다. 코로나 19로 인해 2년 만의 고향 나들이다. 반겨주는 이 없어도 마음만 앞서 달려보지만, 고향은 이제 기억 속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살갑게 맞아 줄 부모님도 안 계시고 마을을 내리는 오솔길은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풀밭인지 모를 정도로 강인한 잡초가 다 점령해버렸다. 부모님이 피땀 흘려 일구신 너른 농토는 요양원이 들어서서 낯설기만 하고 이제는 부모님의 묘소만이 마음의 고향이 돼버렸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생감자처럼 아린다. 감자꽃 같은 하얀 수건을 두른 어머니 모습이, 쟁기질하시던 아버지의 구릿빛 얼굴이, 도랑에서 썩히던 감자 냄새가 내 삶의 배경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가끔 몇 줄기 바람이 그리움의 아라리로 기억 속을 파고들어 가슴속에서 아리는 날이 있다. 추억은 기억이 가슴 한 언저리에 뿌려놓은 그리움의 불씨다. 돌아보면 힘들었던 순간도 가슴속에 움푹 파인 주름살 깊은 곳까지 스며 따스한 삶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비록 부모님은 안 계셔도 올해도 물론 어김없이 몽실몽실 감자꽃이 범람했으리라. 그리고 알토란 같은 감자를 잉태했으리라. 여전히 고향을 그리는 사람들에겐 추억으로 풍년 질 것이고 닳고 닳은 수저로 긁어 지은 감자밥은 참으로 포근할 테다. 감자는 우리네 어버이 같은 작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작물은 썩으면 일단 이용 가치가 없어지는데 감자는 썩어도 끝내 버릴 것이 없다. 썩으면 전분을 얻어 맛있는 감자떡을 만들어 먹었고 전분을 얻고 난 껍질은 돼지 먹이로 쓰였다. 썩어서도 인간에게 이롭게 하는 고마운 작물이다. 그런 감자처럼 소박하고 바위처럼 우직하게 연출하지 않는 삶의 풍경 속에서 진솔하게 감자바위들이 사는 곳이 고향이라는 것이 심적으로 참 든든하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산자락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곡식을 가꾸며 험한 산세와 더불어 강하게 살아온 사람들, 그래서 건강한 생명력이 넘치는 감자바위의 삶의 터전에서 어린 시절을 살아온 배경이 내 삶의 양분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유배 문화, 은둔 문화, 아라리의 문화, 탄광 문화가 공존했던 곳 정선, 이런 문화를 파고들어 보면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애환을 실타래 풀듯 하루하루 풀어내며 적응하려 애쓰던 삶의 아우성, 그 천 년의 소리가 바로 대 장편 서사시가 정선 아리랑 아니던가?

문만 열면 높고 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서 있고, 구부러진 물길 따라 요리조리 흐르던 시냇물, 초가집 굴뚝까지 산비탈이 내리닫던 그곳에서 감자를 밥으로 먹으며 살았으니 부모님의 삶은 무척 고단하고 힘들었을 게다. 그렇지만, 가난만큼은 대물림 않겠다며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일만 하시며 자식에게는 늘 당당하게 살라 하셨다. 온종일 감자를 캐느라 굽어진 허리로 삶의 무게를 견디며 비탈진 밭에서 일곱 식구의 먹을거리를 충당하시고 오 남매의 학비를 캐내셨던 감자는 흙 속의 진주나 진배없다며 끝내 당신들의 고달픈 삶의 속내는 숨기셨지만, 늘 삶은 고단하였으리라. 그래서 한을 아라리 가락에 담아 풀어내며 위안 삼았는지도 모른다.

12일의 짧은 고향 나들이를 하고 나니 또다시 부모님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귓전을 맴도는 날이 여러 날 될듯하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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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 2022-10-13 18:30:38
준호는 감자를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