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본질을 생각하다
‘자유’의 본질을 생각하다
  • 김규원
  • 승인 2022.09.2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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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전주 지역 최저기온이 13도까지 내려갔다. 완연한 가을이다. 교외로 나가면 황금 들판을 이룬 풍작이 반갑지 않은 농부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정부와 농협, 자치단체가 나름 벼를 사들여 시장격리를 한다지만, 쌀값은 일반 생필품 대비 기준물가 사상 최저를 기록하나 싶다.

기왕 시장격리를 하려면 제대로 사들여서 농부들의 시름을 덜어주면 좋으련만, 정부는 하는 척 시늉만 내고 있다. 쌀값도 시장경제에서 자유를 누리도록 방임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조금만 마음을 쓰면 황금 들판이 기쁨으로 다가설 수도 있으련만.

양곡을 저장할 창고가 없다면 사들인 양곡을 굶주림에 허덕이는 분쟁지역이나 아프리카에 보내어 찌부러진 나라 체면을 살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쌀값이 폭락해야 쌀농사를 짓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모르쇠로 버틴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윤 대통령이 20일 유엔총회에서 11분간 말한 기조연설에서 자유라는 단어가 21번 나왔다고 한다. 그는 연설에서 유엔 헌장은 더 많은 자유 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 수준의 향상을 촉진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라며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인류의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취임사에서 35, 8.15 경축사에서 33번 자유를 말하고 연대를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의 연설을 유엔총회에서 재탕한 셈이다. 그렇게 기회마다 강조하는 그의 자유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제각각이다.

 

자연스러운 자유와 위험한 자유

 

아리스토텔레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루소, 헤겔 등 서양 철학에서 자유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제각각 다른 정의와 해석이 이어졌다. 물론 그 시절에 우리나라에는 개인의 생각조차 자유롭지 않아야 바른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서양의 자유는 지배계층과 연관한 귀족들의 특권을 추구하는 데서 발달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당장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이 어려운 평민과 노비들에게 자유는 사치스러운 망상이거나 좋게 보아도 닿지 않는 이었다.

거기에 교정일치(敎政一致)의 중세사회에서 종교가 개인의 내면, 생각과 사생활마저 간섭하는 데에 이르면서 저항이 발생했다. 그 저항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가시화함으로써 저마다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발버둥했다.

그 자유가 보편화되면서 절대왕정과 갈등이 표면화하여 일부 계층만 누리던 자유의 둑이 무너져 가진 자의 전유물이던 자유를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누리는 이의 형편에 따라 제각각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힘을 가진 자의 자유는 거칠 것 없이 무한으로 펼쳐졌고 돈을 가진 자는 권력의 그늘에 숨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범주를 넘지 않는 자유를 누렸다. 반면에 힘도 돈도 없는 서민들은 힘과 돈의 위력이 미치지 않는 좁은 범위 안에서 숨어서 자유 아닌 자유에 목말라했다.

안타까운 일은 그 좁아터진 자유를 빼앗아 이익을 취하는 종교나 이념집단이 창궐해 있는 점이다. 누릴 것이라고는 생각 속의 자유뿐인 이들이 그들의 세뇌에 미혹하여 자신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내어주고도 그 상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복잡한 현대 문명사회에서 의지처를 찾는 나약한 심리를 낚아채는 집단에 의해 이념에 매몰되고 정신을 저당 잡혀 산다. 그들이 아는 신앙이나 이념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선동에 휘말려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나 변질한 자유에 휩쓸려 아픈 줄도 모른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어떤 자유인가?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승자 독식이 아닌 자유를 말했다. 그 자유를 누리는데 일정 수준의 경제적 기초와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있다고 판단했다. 이 문제를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여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약과 빠른 성장은 과학과 기술 혁신에 의해서 이룩할 수 있다고 풀었다.

이어서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은 우리 혼자만의 노력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며 이를 이뤄낸 나라들과 협력하고 연대해야만 한다 라고 설파했다. 미루어 생각해보면 미국과 일본을 염두에 두고 그들과 협력하고 연대하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일본이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도 없이 한국의 급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특정 품목 수출제한 조치 등에 지난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했던 일을 은근히 꼬집었던 말로 짐작한다. 그러나 일본은 친일세력들이 종주국으로 생각하는 만큼 우리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도 역시 트럼프 이후 계속 자국 이익을 위해 공장 신축 등을 강요하고 지난번 전기차 지원금 제한 조치에서 보듯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압박하는 일을 서슴지않는다. 우리가 그들에 매달리거나 끌려가는 형태로는 끝까지 변방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코뚜레를 잡힌 소가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이번 윤 대통령의 유럽행과 유엔총회 방문에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48초간 인사만 나눈 일이나, 굴욕적으로 일본 기시다 총리를 찾아가 억지 간담회를 한 일이 그 자유를 위한 것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결국 뉴욕에서 두 나라와의 접촉은 뉴 욕사태가 성과를 대변했다.

소설가 김훈은 KBS와 인터뷰에서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더 확대해서 이 사회의 여러 가지 그 양극화의 문제와 모순과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많은 의문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자유를 무한대로 보장하면 우리가 다 잘살게 된다는 논리도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규제라는 것은 풀어야 될 규제가 있고, 더 강화해야 될 규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부자만 잘사는 자유를 위해 국민은 희생할 마음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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