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움을 위한 서정이라는 샘물”
“사람다움을 위한 서정이라는 샘물”
  • 김규원
  • 승인 2022.09.19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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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좋은삶 -76회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뎅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게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김남주(1946~1994.전남 해남)추석 무렵전문

 

김남주 시인은 이 땅의 반체제 운동과 민주화를 꿈꾸다 요절한 시인이다. 그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엄숙주의 언어와 피의 언어로 점철되어 있다. 다음 작품을 보면 김남주 시인이 지향하는 시 정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으며, 그의 시들이 안고 있는 서늘하기까지 한 엄숙주의 언어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모가지를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김남주전문) 섬뜩한 시의 진술 내용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울림일 수도 있지만, 결국 으로 상징되는 노동의 신성성에 대해 가슴 서늘한 각성을 동반하게 한다.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제도가 엄연했던 시대일망정, 한 인간의 내면에는 무시당할 수 없는 존재의 의미가 엄숙히 자리 잡고 있을 터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으로 상징된 노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 노동의 신성성을 무시하고 능멸하는 존재는 그것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주인자는 아는 유식을 뽐내지만 [노동]’의 신성함을 모르는 무식한 자이며, ‘자를 모르지만 [노동]’의 신성함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존심을 지닌 유식한 사람이다. 유무식이 단순히 머리에 먹물이 얼마나 들었는가, 아니면 가방끈이 얼마나 긴가에 따라 나뉠 일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이런 시인에게도 이 작품추석 무렵을 대하노라면, 여유와 해학, 그리고 시의 본향인 서정의 맥락과 함께 시적 정서의 참모습이 무엇으로부터 유발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엄숙한 시정신일지라도 그것이 솟아나는 곳은 서정이라는 샘물이다.

이 작품은 마치 단막 희곡을 읽는 것 같다. 시간적 배경은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초저녁이다. 공간적 배경은 자식놈을 데불고 걷는고향의 들길이다. 등장인물은 아빠(말수는 적으나 상황판단에 민감한 자상한 아비)와 아들(갓 네 살짜리, 아빠와 친밀감이 형성된 영특한 아이)이 주요 인물이다. 여기에 부차적인 인물로 아낙 셋(고추밭에서 일하는 시골 아낙네들)이 등장한다. 무대의 정면 위에는 초승달(자연물이지만 구경거리를 외면하지 않는 민중을 상징한다)이 떠 있다. 전원 풍경이 물씬 풍기는 시골 들녘을 전면에 배치하되, 오른쪽 뒤편으로 너른 고추밭이 설정되어 있으며, 무대 왼쪽 뒤편에는 화면을 이용하여 초승달을 뜨게 하되, 하회탈처럼 웃음을 머금은 모습으로 그려서 걸어두고, 무대 중앙 뒤편에서 무대 앞쪽으로 구부러진 시골길을 설정해 둔다.

이 단막 희곡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도시 변두리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부자가 모처럼 고향을 찾는다. 추석-한가위 보름이 되려면 한 열흘 남짓 남았지만, 서둘러 성묘라도 할 모양이다. 살림은 어렵지만 구김살 없이 키우는 아들 녀석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찾아가는 고향 길에 초승달이 떠서 이 부자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본다. 네 살짜리 꼬마지만 남녀의 차이를 알아차리고, 무력하거나 무료하게 걷고 있는 아빠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빠는 볼 수 있어도 짐짓 외면했거나, 아빠가 목격한 것을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어 아닌 보살하는데, 눈치 없는[혹은 눈치 빠른]아들놈은 제가 본 것을 아빠에게 넌지시 귀띔하고야 만다.

이 작품을 대하노라면, “미워할 줄 모르면 사랑할 줄도 모른다는 격언이 생각난다. 이 말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었을 것이다. 불의를 미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정의를 사랑할 줄도 모른다는 의역도 가능하며, 독재자를 미워할 줄 모르는 자는, 민주주의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라는 주석도 가능할 것이다.

풍부한 서정성을 간직한 사람일수록 미워할 것들은 오뉴월에도 찬 서리가 내릴 정도로 미워할 줄 알며, 사랑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라도 뜨겁게 껴안을 줄 안다. 그런 서정성을 온몸으로 간직한 사람을 꼽으라면 시인이 첫머리에 들어야 하며, 서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이 시를 쓴 시인을 꼽아야 할 것이다.

시인이 뜨거운 열정으로 독재를 타도하고ㅡ 체제의 부당성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이유도 바로 네 살짜리 아들과 함께 고향길을 걸으면서 느꼈을, 이 아름다운 서정의 소유자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악을 미워하는 이상으로 정의와 선을 추구하는 열정이 곧 이 시의 배면에 두렷하게 그려져 있음을 음미하는 일은 시 읽기의 비밀 아닌 비밀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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