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 연휴는 우리의 '세시풍속'과 함께
올 설 연휴는 우리의 '세시풍속'과 함께
  • 전주일보
  • 승인 2009.01.2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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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세시풍속

김복현 원장
2009년 설날을 맞이하여 정월에 있었던 소중한 우리의 것을 되 새겨 보고자 한다.

매년 이때가 되면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전통문화에 대한 것들이 있다. 바로 세시풍속에 관한 것들이다.

우리 민족과 세시풍속과는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가 있기에 우리는 이맘때가 되면 절로 머리에 떠오르고 있는 것들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현대 문화의 거센 물결에 휩싸여 세시풍속은 거의 상실되어가고 있다.

오늘은 이 훌륭한 전통문화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음미하는 생각으로 되 집어보고자 한다. /익산문화원 김복현 원장

1. 歲時風俗(세시풍속)이란 무엇인가?
쥐불놀이
세시풍속은 1년을 주기로 해마다 계절에 따라 관습적으로 되풀이 되는 생활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해마다 되풀이되기에 개인 생활이나 국민 생활에 지대한 역할을 차지했다.

세계 어디에 사는 어떤 민족에게나 세시풍속은 있지만 농경문화를 기본으로 하는 민족의 경우 세시풍속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각종 식물의 성장과정이 기후의 변화와 더불어 어김없이 규칙적으로 반복을 하기에 해마다 주요한 행사로 연결시켜 나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거를 수 없는 삶의 수단과 방법으로 어느 때는 휴식의 시간을 어느 때는 활기를 불어 넣는 역할로 신선함을 주기에 너무나도 좋았던 세시풍속의 자리가 되고 만 것이다.

특히 자연의 환경과 함께하는 농경문화를 즐겨했던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세시풍속은 생활의 전부가 되기도 한 것이다.

2. 세시풍속의 역사

달집태우기
구석기 시대의 세시풍속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신석기시대에 와서 식량을 생산하는 관련 출토품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동기시대(BC-700년)에는 벼농사와 관련된 자료가 출토되기 시작한다.
AD3C경 魏志東夷傳(위지동이전)에는 농경의례에 관한 기록이 나타난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농경문화가 점진적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국가적으로 농경문화 행사를 즐기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종교적인 것과 세시풍속이 어우러지면서 농경문화가 그 무엇보다도 선결문제로 등장하게 되며 1년 24절기를 활용하는 단계로 진전되어 우리민족의 근간이 된다.

3. 현대의 세시풍속은?

농악놀이

 

 

 

 

 

 

농경문화는 신석기 시대 이래 6천년동안 말없이 우리민족과 함께하면서 우리민족의 뿌리 역할을 해왔지만, 근래에 와서 그 역할이 모두 상실되어 버리고 말았다 농경시대에서 공업시대로 변천하면서 식량의 소중함을 망각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식 정보화 시대인 오늘날에는 쌀에 대한 가치가 인정을 받지 못하다 보니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은 농기의 글자로만 남는 전 시대의 유물로 취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4. 정월의 세시풍속

○ 설날 차례. 성묘. 세배

지신밟기

 

 

 

 

 

 

설날 茶禮(차례) : 반드시 떡국을 올려야한다고 하여 ‘떡국차례’ 라고 하는 행사를 했다. 떡국이외에 탕(북어ㆍ소고기ㆍ다시마를 넣고 끓인 탕) 나박김치 나물(무나물ㆍ숙주나물ㆍ고사리나물) 간장 삼색실과(밤ㆍ대추ㆍ곶감) 사과 배등을 마련한다.

성묘 : 차례를 마친 후 성묘를 하는데 조상의 묘소를 다니면서 잔에 술을 붓고 절을 한다. 이미 집에서 차례를 올렸으므로 제물은 삼색과일과 포 등으로 간소하게 마련한다.

세배 : 성묘를 마친 후 집안어른과 동네어른에게 세배를 드리러 다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각별한 사이가 아니면 동네 어른에게 세배 드리는 일이 없게 되었다.

○ 복조리 사기
정초에 장사꾼이 복조리를 사라고 외치면서 골목을 다니거나 가정을 방문한다. 복조리는 복을 가져다준다고 하여 가정에서는 새해를 맞아 몇 개씩 구입을 한다. 집안의 남자 숫자만큼 사기도 한다. 복조리는 대체로 X자로 묶은 다음 방문이나 그 밖의 적당한 자리에 걸어둔다.

○ 신수 보기 부적 붙이기
식구들의 신수를 보아 운이 좋지 않은지 액이 끼어있는지 이를 피할 수 있는지의 방법을 법사나 절에 가서 받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부적을 받아와 안방이나 그 외에 적당한 장소에 붙인다.

○ 입춘 첩 붙이기
집안이나 마을에 漢學(한학)을 한 분에게 부탁하여 立春大吉(입춘대길) 建陽多慶(건양다경)이라 쓴 입춘첩을 대문 앞에 붙인다.

○ 보리 뿌리 점치기
입춘 날에 보리 뿌리가 여러 개 달렸으면 그 해 보리풍년이 들고 뿌리가 별로 없으면 흉년이 든다고 여기기도 했다.

○ 대보름날 오곡밥과 묵은 나물 먹기
열 나흗날은 ‘개보름’이라 하여 명절로 여겼다. 보리밥으로 연명하던 그 당시에 이날만은 쌀(찹쌀 또는 맵쌀)에 보리 팥 콩 조 등 섞어서 오곡밥을 지어먹었다. 오곡밥과 함께 가을철에 갈무리 해둔 나물을 내다 불린 후 기름을 넣어 볶아서 먹는다. 대개가 고사리나물 무나물 시래기나물로 반찬 삼아 먹었다.

○ 잠자지 않기, 연 날리기
열 나흗날은 잠을 자지 않는다. 섣달 그믐날과 마찬가지로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했다. 또한 정월 초승이 되면 아이들이 연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주로 방패연과 가오리연을 만든다. 연은 설을 쇠고 나서 날린다. 이 연날리기는 정월 열 나흗날까지 진행된다.

○ 부럼 깨기와 귀밝이술 마시기
보름날 아침에 밤이나 호두 등 견과류를 치아로 깨문다. 이렇게 하면 한 해 동안 부실목(종기)를 앓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보름날 아침 식전에 맑은 술 한잔을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마신다. 이를 귀밝이술이라 하며 이 술을 먹으면 한 해 동안 귀가 밝아진다고 여겼다.

○ 불 싸움, 윷놀이
보름날 방에 남자아이들이 구멍을 뚫은 빈 깡통에 나무를 잘게 잘라 불을 붙여서 빙빙 돌린다. 윗마을 아랫마을 간의 중간 지점에서 이 깡통을 서로 던진다.

정월 초승부터 보름날 까지 마을에서는 수시로 윷놀이를 한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윷놀이를 했다.

○ 달집태우기와 지신밟기, 쥐불놀이
달집태우기는 쥐 불 놀이와 같이 불과 함께하는 것으로 농악대와 같이 지신밟기를 하고나서 나무나 짚을 쌓아 커다란 집을 만든 다음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지른다.

농악을 치면서 꺼질 때까지 춤을 추면서 주위를 돌고 뛰면서 환호를 지르기도 한다. 달집 속에 대나무를 넣어 터지는 폭음으로 마을의 악귀를 쫒는다는 의미도 부여하고 있다.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악을 살라버리는 것으로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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