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를 생각하는 사람들
존엄사를 생각하는 사람들
  • 김규원
  • 승인 2022.08.28 13: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지난 71일부터 4일까지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가 전국 18세 이상 성인에 대해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대한 여론을 물었다. 놀랍게도 찬성 82%, 반대 18%였다. 연령별 응답 비율은 18~2981%, 3074%, 4083%, 5081%, 60세 이상 86%로 나타났다.

조력 존엄사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앞당기는 일이다. 쉽게 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살하는 일이다. 질병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또는 굴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을 때 본인의 뜻에 따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일이다.

최근에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존엄사 심사위원회심사를 통과하면 의사가 존엄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력 존엄사 법안을 발의했다. 현행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개정안이다.

이에 대해 의사에게 자살을 위탁하는 것이라거나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할 것이라는 등 반론이 나왔다고 한다. 한국일보는 안규백 의원실이 지난 24일 국회에서 진행한 토론회에서 말기 환자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은 주관적인데 존엄사 혀용의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느냐라는 반론과 조력 존엄사법이라는 이름으로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것은 자살을 포장하는 것.”이라는 반대 의사가 나왔다고 적시했다.

 

존엄사 허용 범위

 

아직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국민 여론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스위스처럼 쉽게 존엄사를 선택하는 정도는 아니어도 말기 암 환자 등 살아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 대한 존엄사를 인정하는 수준 정도로 법이 마련되리라는 전망이다.

스위스에서는 내국인의 경우 집에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별 과정을 거친 뒤 사랑하는 이의 품에서 스스로 죽음의 스위치를 누르거나 약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외국인에게도 존엄사가 허락 되지만, 가족을 동반할 수는 없어서 외롭게 마지막 길을 떠난다고 한다.

존엄사 문제를 두고 우리 국민이 이처럼 쉽게 찬성하고 나서리라고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서 제시한 찬성 가운데 20%는 매우 찬성한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우리 국민의 사고방식이 미련을 두지 않는 건조한 형태로 흐르고 있음을 짐작한다.

최근에 캐나다에서도 만성질환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고 사회에서 멸시 받고 있어서 죽기를 원한다.”라고 신청한 존엄사가 승인되어 논란을 빚었다고 한다. 결국 존엄사 제도가 사회적 약자의 죽음을 방치하는 제도로 전락했다는 비난이다.

그러나 가망없는 환자를 위해 막대한 병원비가 쓰이고 가족 전체가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데 과연 어떻게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누구도 안 된다는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환자의 고통 정도, 가계 운영이나 생계 곤란의 정도 등을 명확히 구분하는 방법이 없으니 자살을 늘리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는 반론도 무시할 수 없다.

논란의 여지가 많긴 해도 이제 우리도 존엄사법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형편이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의 여론인데 대다수 국민이 찬성한다니 비켜갈 방법이 없지 않은가? 아마 다수 국민의 생각은 즐겁게 살다가 재미 없어지면 맘대로 떠나기를 원하는 듯하다.

즐겁고 편하게 살기 위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는 사람들이 존엄사를 찬성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싶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그 객관적 판단 기준이 명확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모호한 기준으로 자꾸만 뒷소리가 나오고 너무 쉽게 세상을 포기하지는 않아야 한다.

 

내 삶을 끝낼 권리

 

세상에 태어날 때 내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세상에 나왔다. 전혀 알지 못하는 순간 생명으로 결정되어 세상에 나와 내 의지와 관계없이 흐름에 떠밀리어 살아왔으니 적어도 죽음은 내 의자대로 결정해야 할 것 아니냐는 게 존엄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교육을 받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까지 과연 얼마나 내 마음대로 힐 수 있었던가? 부모의 뜻에 띠라 이렇게 저렇게 길러지고 조금 자라면 사회가 정한 의무교육에 순응하여 좋건 싫건 공부를 해야 세상에 나갈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거의 모든 것이 떠밀리듯 남들이 다 하니 나도 따라서 해야하는 집단의 규범과 행동양식을 다라하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산 삶에서 마지막 죽음조차도 내 의지와 관계없이 지극한 통증을 견디며 남의 도움을 받아가며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필자는 원인도 모르는 불치의 병에 걸린 아내를 15년간 간병했던 경험이 있다. 10년 가까이 흐르자 몸이 뒤틀리고 얼굴마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뒤틀리며 머리만 감각을 느끼고 전신이 마비되어 갔다. 의식은 있어서 눈을 깜박여 대답할 수 있었다.

감각이 없으니 고통은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생각이 멀쩡하므로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며 이런 몸으로도 살고 싶은지 물었다. 대답은 살고싶다였다. 그리고 5년을 더 비틀리며 살다가 어느 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병원에서 숨졌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간 아내의 병이었다. 그런 모습으로라도 살고 싶은 사람은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기 싫은 사람은 스스로 자기 삶을 끝내기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식조사에서 나온 결과처럼 82%는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종교적인 견해나 특정인들의 주장이 반대편에 있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나야 한다. 고통스러운 삶을 억지로 이어가도록 강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여태 세상의 규범과 흐름에 따라왔으니 죽을 때라도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