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세상을 열 수 있는 시의 열쇠”
“초록세상을 열 수 있는 시의 열쇠”
  • 김규원
  • 승인 2022.08.22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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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잃어버린 것일까

풀밭에 버려진 녹슨 열쇠

 

누가 이 초록을 열러보려 했던 것일까

누가 이 봉쇄수도원을 두드렸을까

 

차가운 촛농으로 잠근 오래된 사원

 

수런수런 연둣빛 입술들이 피워올리는 기도문

개미들이 땅과 하늘을 꿰매고 있다

 

, 저기 호두껍질을 뒤집어쓴

사람이 걸어오고 있다

풍병(風病)든 그의 암호, 누구도 열 수 없다

 

-장옥관(1955~. 경북 선산)잃어버린 열쇠전문

 

이 시의 화자는 누구일까, 누가 과연 이 장면을 읽어내고 풀어내며, 질문하는 것일까? 보통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하느님이거나, 아니면 봉쇄수도원 수도승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연둣빛 입술들이거나, 개미들일 것이다.

풀밭에 열쇠가 버려져 있다. 비바람을 동반한 사계절이 지나가고, 그에 따라서 세월의 수레바퀴가 훑고 지나간 풀밭에서 쇠붙이 열쇠는 녹이 슬었을 것이다. 열쇠의 주인은 자신만의 비밀이나, 자신만의 황금을 쌓아둔 곳간의 열쇠를 잃어버린 것이다.

하필 그 버려진 곳이 풀밭이다. 풀밭은 열쇠-쇠붙이와는 대척점에 있는 공간이다. 풀을 베어 쓰러뜨리는 자가 쇠붙이다. 그런데 그 쇠붙이가 오히려 풀들에 침식당하고 있다, 살해당하고 있다, 녹아내리고 있다, 그 존재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쇠붙이[열쇠]가 나약한 초록세상 풀밭에서

그런데 화자의 시선이 재미있다. 황금곳간을 여는 버릇으로 초록세상을 열어보려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풀밭에 열쇠가 떨어져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범인은 언제나 근자지소행(近者之所行-범죄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자가 저지를 것)이라 했다. 풀밭을 열어보려 한 자이니까, 풀밭에 쇠붙이가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봉쇄수도원을 찾아갔는지도 모른다고 눙치고 있다. 아마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가늠함으로써, 열쇠의 주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봉쇄수도원은 글자 그대로 세상과는 담을 쌓은 채, 출입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封鎖] 채 수도에만 전념하는 곳이다. 세상과 담을 쌓은 풀밭[초록세상]을 황금곳간의 열쇠를 지닌 사람이 찾아갈 수 있을까, 그래도 수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러나 봉쇄수도원은 사람이 맘만 먹으면 누구나 열 수 있다, 다만 쇠붙이[열쇠]로 만든 황금열쇠로는 열리지 않는다. ‘차가운 촛농으로 만든 자물쇠로 채워져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봉쇄수도원을 여는 열쇠는 풀밭에서 녹슬어가는 열쇠가 아니라, 바로 차가운 촛농을 녹일 수 있는 뜨거운 마음[순결수행-순수열정]’이 아니고서는 열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그 열정의 비밀 아닌 비밀을 아는 이는 따로 있다. 바로 이 시를 읽을 줄 아는 눈 밝은 독자들뿐이다. 그들만이 이 초록세상이 있는 봉쇄수도원을 열 수 있다.

이 봉쇄수도원에서는 연둣빛 입술들이 봄이 되면 기도문을 피워 올린다. 여기저기 돋아나는 기도문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다. 수런수런 피워 올리는 연둣빛 기도문! 어느 시인은 이처럼 돋아나는 기도문을 연두 곱하기 연두[송명숙의 동명의 시와 시집]라고 감동하기도 한 적이 있긴 있다. 초록 세상의 기도문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가멸찼으면, 연두가 곱하기로, 기하급수적으로, 아니 벌 떼처럼, 우후죽순처럼 피워 오른단 말인가!

초록세상-봉쇄수도원에서는 개미들이 바느질하고 있다. 개미들은 땅과 하늘을 꿰맨다. 개미들의 근면성이 점점 멀어지기만 하는 땅과 하늘, 벌어지기만 하는 그 틈을 메우는 것이다. 누가 과연 하늘과 땅을 멀어지게 하는 것일까? 그 범인은 바로 뒤에 나온다.

단단한 호두껍질을 뒤집어 쓴/ 사람이 바로 그 당사자다. 그는 얼마나 단단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지, 말귀를 알아들을 수도 없고, 연둣빛 입술들이 피워 올리는 기도문도 들을 수 없으며, 개미들이 벌어진 땅과 하늘을 꿰매는 모습을 알아차릴 수도 없다.

사람이 머릿속에 지니고 다니는 두뇌-뇌 사진을 바라보노라면 영락없는 호두 속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사람의 뇌도 좌뇌-우뇌로 갈라져 있다는데, 호두껍데기를 깨뜨려보면 호두 역시 좌우로 갈라져 있다.

뇌가 보여주는 주름들처럼 호두 속도 그렇게 깊은 골짜기로 주름이 잡혀 있다. 그러고 보면 호두나 사람이나 단단한 껍질의 보호를 받는 셈이다. 이 단단한 껍데기 속의 왼쪽에는 이성이란 창을 장착하고, 오른쪽에는 감성이란 방패를 들고서 완전한 존재라고 으스대는 꼴, 그게 사람이다.

더구나 이 자는 바람병[風病]’에 들어 그만이 지니고 있는 암호를 해독할 수 없다. 사람이 아마도 풀밭에서 열쇠를 잃어버린 그 사람일 것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는 병-바람 든 병을 앓는 사람이 황금계곡을 걸어간다.

그러나 그가 지니고 있는 황금열쇠로는 끝내 초록세상-수런수런 연둣빛 입술들이 피워 올리는 기도문을 듣지 못한다. 이성의 창만으로는 감성의 방패를 뚫을 수 없는 것처럼, 갈라진 땅과 하늘을 꿰매고 있는 개미들의 초록세상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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