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부당합니다"
"대통령님, 부당합니다"
  • 신영배
  • 승인 2022.08.1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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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기자
신영배 대표기자

지난 8, 윤석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용산 청사에 들어서며 도어스태핑이 진행되던 중간에 모 TV방송기자가 대통령님 파이팅이라고 했다. 그 소리에 윤 대통령은 활짝 웃으며 고맙습니다.”라며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이 일을 두고 어떤 외국 기자는 대통령실에 출입하는 일부 기자들이 치어리더처럼 대통령 발밑에 굽실거리는 모습이 민망하다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필자 또한 언론 선배로서 창피하기가 그지없다.

아마도 다수의 국민들이 언론의 부끄러운 단면이라며 개탄을 했을 것이다. 언론의 존재가치는 한마디로 정론직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명을 까마아득히 잊어버린 채, 최고 권력자에게 질문이 아닌 아부를 하는 것은 기자의 태도가 아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식이 없는 기자는 곧 사이비 기자다. 기자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가감 없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역할과 함께 그 문제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과연 옳은 일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기자는 개인적인 견해나 사적인 감정 등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공익과 공정, 그리고 정의를 위해 글을 써야함은 기자의 첫 번째 덕목일 것이다.

#이 시대의 언론 현실

언론을 두고 사회의 목탁이니, 정의의 사도니 하던 시대가 있었다. 오로지 기자 본연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진력(盡力)하며 박봉에도 타인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부끄러운 돈을 받지 않았던 이들이 원고지에 자신의 양심을 적어내던 시절이 있었다물론 그중에도 부끄러운 자들이 섞여 있었지만...

때로는 기사로 인해 테러를 당하거나 권력의 힘에 잡혀가는 일도 허다했다. 신문이 권력으로부터 정간(停刊) 처분을 당하거나, 심하게는 폭력배를 동원해 신문사를 습격하고 인쇄를 하는 윤전기에 모래를 뿌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승만 정권을 거쳐 박정희 독재시대와 전두환 신군부까지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언론은 점차 순치(馴致)되어갔다. 무자비한 권력에 맞서봐야 돌아오는 건 보복이었다. 또 그들에게 잘못보이면 광고를 중단시키는 등의 수법으로 언론사 존립 자체를 위협했다. 

기자의 양심을 지키다가 숱한 동료들이 밥줄을 잃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권력과 적당히 타협하는 언론사와 기자만이 살아남았다. 거기다 나라에서 막대한 돈을 퍼부어 특정 언론사를 돕는 수단이 만들어졌다. 다수의 언론사들은 그 공돈을 받을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열심히 아부하고 권력의 각종 비리를 감추는데 앞장섰다.

기자가 권력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쓰기보다는 감추는 일을 잘해야 출입처는 물론 사내(社內)에서 인정을 받았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치켜세우고 알랑거리는 기사에 능숙한 기자가 차장, 부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그러한 사이비 기자를 많이 양산한 언론사에는 광고가 많아졌다. 사이비 언론사의 편집국장이나 보도국장, 발행인들은 권력으로부터 치하를 듣고 목에 힘을 줄 수 있었다. 이어 그들은 권력에 아부하며 손쉽게 사회적 지위를 얻었다.

당연히 사이비 언론과 기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 그리고 기득권을 형성했다. 기득권 언론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지켜내기 위해 새로운 언론사가 끼어들 틈을 봉쇄했다. 독재시대의 언론 통제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기자협회의 회원자격을 설정해 끼리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각종 정보는 출입처 기자실에서 회원사 기자들끼리 공유하고 합의에 따라 공개되거나 감추어졌다. 기자협회에 가입하지 못한 기자들은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환경에서 취재를 해야 했다.

작금의 현실은 엉터리 숫자인 종이신문 발행 부수를 유지하기 위해 허위 부수를 찍어 묶음도 풀지 않은 채 폐지처리장으로 버려지는 신문의 부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솔직히 본지 또한 편집방향과 정책비판에 앞서 광고수주가 우선임을 지면을 통해 고백한다. 

신문, 방송, 통신, 인터넷신문 등의 언론사들은 이미 정직이나 정의 따위의 고지식한 개념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오로지 수지타산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전락했다.

특정언론사들은 언론을 빙자한 영향력을 내세워 자신의 사업체를 지키거나 상승된 지위를 누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언론사들이 기본적으로 저널리즘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경영 문제와 부딪히면 정도(正道)가 물러서는 한계점에 봉착하기 일쑤다.

#전북 언론풍토, 바뀌어야

전북에는 일부 신문과 방송, 지역 유지(有志), 유력 기업이 이해관계로 뭉쳐 토호 세력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도정과 시정, 그리고 군정은 그들의 뜻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러나 시민의 눈이 밝아지고 시민단체 등 깨어난 의식이 간섭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들이 깃발을 흔들어도 마냥 따라가지 않는다. 시민들이 세상을 바른 눈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도 그들은 시민을 속이고 꼼수를 둘 기회를 노린다.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언론과 토호 세력은 시대의 변화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보지도 않고 폐지로 팔려가는 신문을 찍느라 자원을 낭비하고 그렇게 찍은 부수를 근거로 광고비를 챙기는 악순환은 이제 그만 끊어야 한다.

전북의 한 유력 일간지는 전북을 벗어나 외지에서 신문을 인쇄한다. 그러면서도 향토지를 주장하며 도내 지자체와 기업체에 광고와 협찬을 요구한다.

각설하고 이젠 진실과 사실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새로운 언론상을 확립하자. 잘못이나 부조리는 반드시 드러내서 고쳐야 전북이 바로 선다. 그 역할이 곧 전북언론의 책무다. 기자는 밝히고 드러내는 게 본업이다.

기자가 감추고 싸 발라도 더러운 냄새는 절대 가시지 않는다. 끝없이 발전하고 달라지는 시민의식 앞에 구시대의 버릇으로 감추고 비호(庇護)하는 짓은 추잡한 범죄 행위다. 도지사와 단체장들 또한 사이비 언론과의 짬짜미를 떠나 면전에서 비판을 들으며 발전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옳은 주장을 펼치는 언론사와 기자를 인정하고 대접해야 바른 언로가 생기고 지역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바른 언로(言路)가 열리지 않는 사회는 언제나 시끄럽다. 언론이 바른말을 하지 않으니 세상이 나아가지 못한다.

시민이 언론을 기레기라고 부르는 현실은 언론인 스스로 만든 결과다. 기득권 언론끼리 친목 모임을 만들어서 기사와 광고를 조율하는 방식으로 건전하고 올곧은 언론의 개입을 차단하려는 어리석은 짓도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신뢰를 잃은 언론의 위상을 회복하는 방법은 단 하나, 성역 없는 취재와 보도뿐이다. 사명감 없이 쓰는 기사는 자신은 물론 지역사회를 병들게 한다. 홍보기사로 고맙다는 인사를 듣기보다 잘못을 지적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세상을 발전시키는데 작게나마 기여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청천백일(靑天白日)에 자신의 이익과 소속된 언론사와 출입처의 대변을 자처하는 기자단 따위로 눈 감고 아웅하는 사이비 기자와 언론사들은 이제 퇴출돼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대통령님 파이팅이 아니라 대통령님 부당합니다라고 질문하는 기자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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