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애冷麵愛 빠지다
냉면애冷麵愛 빠지다
  • 전주일보
  • 승인 2022.08.0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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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냉면을 대표하는 곳은 평양과 함흥이다. 평양으로 상징되는 관서 지방과 함흥으로 대표되는 관동 지방의 특색이 반영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확연히 다르다.
 원래 냉면은 한겨울, 온돌방에서 이가 시리도록 찬 동치미 국물에 면발을 말아먹는 겨울철 음식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변하고 사람들의 취향이 달라지면서 요즘은 찌는 듯 무더운 한여름에 먹는 여름철 별미 중 별미로 변했다.
  오랜 전통이 있는 냉면은 우리 고유의 국수 요리 중 하나로, 삶은 국수를 찬 육수에 넣고 양념과 고명을 얹은 음식인 주재료는 면발이다. 육수와 양념 등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잘 삶아진 면발과 육수의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어 맛있는 냉면이 된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본질적 차이는 국수를 만드는 면의 재료다. 평양냉면은 메밀로 면발을 뽑지만, 함흥냉면은 메밀이 아닌 감자 전분으로 국수를 뽑는다. 요즘은 평양냉면에도 메밀에 전분을 섞고, 함흥냉면 역시 감자 전분이 아닌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다. 평양냉면은 구수하고 담백하며 툭툭 끊어지면서도 쫄깃한 맛이 특징이다. 그런가 하면 함흥냉면은 쇠심줄보다 질기면서 오들오들한 맛이 매력이다.
  냉면은 고려 시대부터 평양 지역에서 겨울 향토 음식으로 전래하여 조선 시대에 이르러 계절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널리 먹는 음식으로 알려졌다. 일제시대에는 평양에 수십 곳의 냉면 전문점이 운영되었다. 그것이 점차 서울을 비롯한 남쪽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냉면의 주원료인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곡식이다. 북부지방이 원산지인 메밀은 평안도를 비롯한 북쪽 지방의 냉면에 주로 이용되어 왔다. 밍밍하고 슴슴하지만 시원한 국물과 메밀 향 짙은 면 맛을 보여주는 평양냉면과 쫄깃한 감자 전분 면발의 함흥냉면이 생긴 배경이다.
  평양냉면은 좁게 보면 평양 근교지만 넓게 보면 평안남도 일대에서 유래해 진하면서 깔끔한 육수 맛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1920년대 중반 서울의 요정으로 진출하면서부터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서도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조리법이 표준화되면서 전국적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게다가 다른 음식과 비교할 수 없는 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근대화 ? 도시화로 치닫던 시절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함흥냉면은 냉면이 아니었다. 본고장인 함경도에서도 냉면이라는 말 대신 농마국수 또는 녹말국수로 불렀다.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은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을 거치면서 남한에서 평양냉면이 크게 유행하던 시기부터였다. 당시 평안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만들어 파는 평양냉면이 인기를 끌자 함경도 출신들도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으로 국수를 팔았다. 이때 심심한 맛의 평양 물냉면과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운 비빔냉면인 함흥냉면이 동시에 인기를 끌었다.
  함흥냉면의 또 다른 특징은 냉면에 회나 식해를 얹는 것이다. 냉면에 홍어회를 비롯해 명태식해나 가자미식해를 얹어 비벼 먹었다. 함경도 사람들에 의하면 회냉면이 함경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10년 전후라고 한다.
  요즘 냉면을 말할 때 잘못된 것은 주장은, 양반들만이 즐겨 먹던 음식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식제사食制史나 사회사 전공자가 아닌 음식 평론가들의 개인적 소견에 불과하다. 냉면이 지배 계급인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주장의 근거는 빈약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 대한 반대 근거가 더 많다. 이런 주장을 처음 펼친 사람은 조선 시대 후기의 양반들이 요정이나 요릿집에서 냉면을 사 먹었다는 기록만을 근거를 든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보면 상업 시설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양반 계층이나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에 기인한다. 전근대 사회에서 외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소수의 지배 계급만 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확대한다면 현존하는 여러 음식은 사회적 신분이 있는 일부 계층만 매식을 하고 즐길 수 있는 음식이라는 말이 된다.
  여름철 별미인 냉면 한 그릇을 놓고 바라만 봐도 땀이 식고 군침이 돈다. 냉면 그릇 바깥에는 찬 김이 서려 있고 안쪽에는 가는 면발이 삼베 올처럼 가뿐하게 틀어 솟아 있다. 그 위에 길쭉한 무김치와 수육 몇 점과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는 달걀 반쪽은 금방이라도 서걱서걱 소리를 낼 것 같아 좋다. 
  식초를 뿌리고 겨자를 풀어 면발을 휘휘 저으면 산뜻하게 코끝을 적시는 내음은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한다. 면발을 한 젓가락 휙 감아 입에 넣으면 매끄럽고 쫄깃한 맛이 핏줄을 타고 온몸을 한 바퀴 돈다. 국물을 후루룩 들이켰을 때 사이다처럼 짜릿함은 입안은 개운하고 가슴은 서늘하다. 냉면애愛 빠지는 순간 온몸의 열기가 밖으로 빠져나간다. 삼복을 건너는 동안 평양냉면이면 어떻고, 함흥냉면이면 어떤가? 그냥 냉면이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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