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와 외로움에 지친 노인들
더위와 외로움에 지친 노인들
  • 김규원
  • 승인 2022.07.1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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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 끈적거리고 더운 장마철 날씨에 마땅히 갈 데가 없다. 갈 수 있는 곳은 도서관 정도인데 밥 차려 먹고 치우고 나가면 이미 자리가 없다. 자리를 잡아도 젊은이들 눈치가 보여 오래 버티지 못한다. 흘끗흘끗 쳐다보는 시선이 불편해서다.

주머니에 여유가 있으면 친구를 불러 냉면이라도 한 그릇 함께 먹으며 잠시 외로움을 달랠 수 있지만, 요즘 먹을만한 냉면값은 노인이 쉽게 지출할 수준을 넘었다. 물가는 잇따라 오르고 용돈은 외려 줄어드는 냉엄한 현실을 모르쇠로 버틸 수는 없지 않은가.

나름 푼돈이라도 벌어서 쓰는 필자가 이런 형편인데, 자식들에게 다 뜯기고 서푼 국민연금이나 노령연금을 받아 사는 노인들은 말해 무엇하랴. 수도권에 사는 노인들은 전철이라도 공짜로 타고 다니지만, 시골 노인들은 시내버스 비를 꼬박꼬박 내야 한다.

노인복지관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버스를 타고 왕복하면 3,000, 식비 3,500원을 합하면 6,500원이 든다. 물가가 올라 그 금액으로 사 먹을 음식이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점심을 먹지만, 노인들에겐 큰 부담이다.

정치하는 자들이 선거 때면 양로당에 찾아가 큰절하며 표를 달라고 비굴한 웃음을 짓지만, 그때만 어르신이다. 표를 얻고 나면 노인은 귀찮고 냄새나는 존재로 전락한다. 노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소외되고 찌그러질 수밖에 없다.

표득노기(票得老棄)?

이런 문자도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표만 얻고 나면 버려지는 노인이라는 의미로 만든 말이다. 어쩌면 이 시대 노인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사자성어(四字成語)일 수 있다. 앞에 말했듯이 선거 때에 노인들의 표가 당락을 결정했다.

토끼를 잡았으니 토끼를 잡아 온 개를 삶아 먹는다는 고사성어, 토사구팽(兎死狗烹)처럼 표를 얻었으니 다음 선거까지 노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져 관심 밖으로 밀렸다는 뜻이다. 다음 선거에서는 노인들은 그동안의 소외조차 잊어버린다.

지난 대선에서 노인들의 표가 몰리지 않았으면 윤 대통령은 없었다. 그랬는데 새 정부 들어서고 2달이 지나도 약속했던 노령연금 인상은 감감소식이다. 어디에서도 노인을 위한 새로운 시책은 들리지 않는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서민금융 통합지원센터에서 윤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에서 금융당국은 빚투등으로 큰 손실을 본 저신용 청년층을 구제하는 내용의 신속 채무조정 특례제도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 신속 채무조정 특례제도에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로 주식에 투자하고 비트코인에 투자한 젊은이들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은행이 한꺼번에 이자를 0.5% 올리는 빅스탭조치로 막대한 이자 부담에 시달리게 될 청년층을 구제한다는 명분이었다.

빚을 얻어 집을 사는 바람에 이자 부담이 늘게 된 청년들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 아니라, 노름하듯 한방을 노리고 암호화폐를 사거나 주식에 몰빵한 청년의 빚을 탕감해준다는 소식에 각 계층에서 반발이 나왔다.

자영업자의 코로나 경영난을 돕는 일이 아니라 한탕을 노린 투자에 끌어들인 빚을 갚아주는 일이 과연 공정한가를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막기 위한 선제 조치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아울러 고물가·고금리 부담이 서민과 취약계층에 전가되지 않도록 관계기관은 각별히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검토하고 내놓는 어떤 대책에도 진짜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조치는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 없는 노인들

온갖 환난을 겪어 온 노인들은 정부의 조치에 대해 늘 순응한다. 불만이 있어도 혼자 구시렁거릴 뿐, 드러내서 말하거나 집단행동을 보이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독재 시대를 살며 시달려 온 그들은 입()이 화()를 부르는 문()이라고 삼간다.

온갖 고난을 몸으로 겪은 그들의 피나는 노력과 근검절약이 오늘의 번영을 이룬 밑천이다. 누구보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었지만, 불만을 내비친 적이 없다. 경제와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그들은 세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독재 시대에 길들어, 정부는 당연히 국민 위에 있어야 하고 국민은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재 시대의 향수에 젖어있거나, 아직도 행정을 책임진 자들을 관리(官吏)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국민을 지배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안다.

작년 말 기준 노인인구가 17%에 달하고 2025년에는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농촌은 이미 오래전부터 초고령사회로 들어섰다. 아직도 뼈 빠지게 일하고 끙끙 앓아가며 농사지어 자식들에게 보낸다. 어떤 며느리는 그렇게 싸준 농산물을 받아와 열어보지도 않고 불결하다며 쓰레기통에 버린다고 한다.

그 일부는 내맘대로 죽을 수 있도록 외국처럼 의사의 협조아래 죽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라고 말한다. 사가 죽을 수 있게 주사를 대주면 스스로 스위치를 눌러 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외롭고 힘들게 사느니 그만 떠나고 싶다는 소망 쯤은 들어주는게 노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노인이 세상을 알고 함께 말할 수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서서 공정(公正)을 이룰 수 있다. 세상과 동떨어진 노인층을 두고 끼리끼리 공정을 말해서는 안 된다. 노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이해하고 배워서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좋은 세상이다.

모든 것을 희생하여 자식을 가르치고 나라를 만든 이들이다. 군대에서 다치고 죽은 이들만 국가 유공자가 아니다. 그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그 자체가 나라를 위한 애국이었다. 지치고 힘이 없어 쓰러진 유공자들을 일으켜 세워 함께 가는 정부와 사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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