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소박한 꿈
농부의 소박한 꿈
  • 전주일보
  • 승인 2022.06.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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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화 /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장
이종화 /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장

예로부터 농사의 성패는 하늘에 달렸다고 했다. 즉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풍년 농사를 위해서는 메마른 땅을 적셔줄 비와 뜨거운 태양과 바람 그리고 찬 이슬도 필요하다. 농사에서 자연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진인사(盡人事)는 외면하고 대천명(待天命), 즉 하늘에만 기대는 건 농부의 자세가 아니다. 간혹 바람에 날리거나 새가 떨군 씨로 약간의 요행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우연을 농사라 말하지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 혹은 여름 하루 놀면 겨울 열흘 굶는다”는 옛말은 농사의 속성을 정확히 제대로 표현한 속담이다. 그래서 농사는 정직하고 성실한 농부를 필요로 한다. 농사가 정직한 업이라면 곡식을 길러내는 농지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

농지를 호주머니를 채워줄 투자 대상으로만 여겨 농사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논과 밭을 이리 저리 거래하고, 또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농부는 당연히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 못한다.

공직자 청문회에서는 부당한 농지 소유에 대한 지적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또 공직자가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농지를 선택하는 걸 보면서 많은 사람들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농지를 투자의 대상으로 여긴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농지에 대한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결국 지난 2월 18일 정부에서는 농지은행관리원을 출범시켰다. 

농지은행관리원에서는 농지의 취득과 소유, 이용실태 등을 상시 조사하여 국민에게 유용한 농지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농지가 필요한 사람이 보다 쉽게 농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의미로는 농지에 대한 투기를 차단하고 농지를 본래의 목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도록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건 2년여의 코로나-19 상황을 견디면서도 다시 5월이 왔고, 담근 볍씨가 자라 써레질이 끝난 무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몇 개월의 휴지기가 끝나고 뿌린 대로 거두려는 농부의 손길이 가장 바쁜 영농철이 돌아온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해 농사로 정신없이 바쁜 농민이 부동산 투기며 각종 재테크로 횡재하는 사돈의 소식을 들으면 땀으로 만들어야 할 미래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평생을 모아도 부족해서 담보로 빚까지 내어 겨우 장만하는 논과 밭의 가치가 그저 한량들의 투기 자본으로 전락해 버리는 저 세상의 셈법에 농민들은 청렴과 정직으로 일구는 농사의 무게를 다시 생각해 본다.

젊은이가 떠나는 농촌에 대한 해법으로 정부에서는 창업농과 청년농의 명찰을 달아 각종 지원과 혜택을 주며 젊은 농업인을 육성하고 있지만 농사의 근본인 농지관리에 대한 올바른 방향이 정립되지 않는다면 성공하기 어렵지 않을까!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식량안보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 밖에도 낮은 식량자급률, 농촌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우리 농업 농촌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절실하다.

성실한 농부의 바람은 흘린 땀으로 차곡차곡 농지를 사서 규모의 영농을 실현할 수 있도록 농지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경자유전의 원칙도 지켜지는 것이다.

그래야 그 터전에서 식량안보의 주역으로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농민으로서 역할을 기꺼이 감내하지 않겠는가!

이제 사회적 합의로 농지은행관리원이 출범해서 엄격하고 세심하게 농지를 관리한다고 하니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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