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 빛에도 모든 생명활동은 아름답다”
“저녁노을 빛에도 모든 생명활동은 아름답다”
  • 김규원
  • 승인 2022.05.30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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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을

탁구공만하게

똘똘 뭉쳐

뒷발로 굴리며 간다

처음 보니 귀엽고

다시 보니

장엄하다

 

꼴을 뜯던 소가

무심히 보고 있다

 

저녁 노을이 지고 있다

 

-이산하(1960~. 경북 영일)쇠똥구리전문

  어느 목숨이나 장엄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모든 생명들이 그 목숨을 유지하느라 치러내는 과정은 귀엽다는 생각보다는 장엄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장엄하다의 뜻풀이를 보니 위엄 있고 엄숙함이라고 한다. 그러면 위엄은 무엇이며, ‘엄숙은 또한 무엇인가? “위세가 있어 의젓하고 엄숙한 태도나 기세이며, “어떤 의식이나 장소의 분위기가 장엄하고 정숙하다고 한다. 우리말이 한자어의 돌림 속에 놓여있는 느낌이다.

  한자말 뜻풀이의 돌림 놀이를 벗어나고 보면,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기울이는 모든 생명체의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 대한 가슴 뭉클한 감동이라는 뜻이다. 그 안간힘에는 자기보다 위세가 있는 자[天敵]에게도 결코 기세가 꺾이지 않으며,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주어진 생명을 끝까지 지키려는 단호한 태도나 기세에서 비롯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모든 생명에게 목숨을 지키려는 자세나 태도에는 느낌의 강약이나 농담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휴머니즘은 단순히 인간의 생명만 존중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쇠똥구리의 장엄한 생명 의지가 우리를 진한 감동으로 몰아넣는다. 어찌 쇠똥구리뿐이랴!

  천적을 피해 높은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부화하는 원앙새, 그 어미가 알 낳을 자리를 고르고, 천적을 따돌리며 포란하는 지난한 과정과 부화한 새끼들을 나무 아래로 유인해 내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사람만이 존귀하다는 말이 얼마나 하찮은 개똥철학인지 실감할 수 있다. 포유동물이 아닌 원앙새들은 물가로 나아가야 먹이활동을 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3~5g도 되지 못한, 나뭇잎 같은 생명체가 제 몸의 수백 배나 되는 높이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장엄을 넘어 적요한 전율이 일 정도다. 나무 아래에서는 어미가 천적들에 들키기 전에 어서 뛰어내리라고 부리를 부딪치며 마림바를 쳐댄다. 갓 부화한 새끼들의 두려운 망설임과 어미의 마림바 연주의 속도는 정비례한다. 마침내 마지막 새끼까지 뛰어내린 원앙새 가족들이 물 위를 헤엄쳐 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생명의 찬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정도로 감동 그 자체다.

  논병아리는 어떤가? 수초 사이에 둥지를 틀고 부화한 새끼의 소화를 돕기 위해 논병아리 어미는 자신의 가슴팍 깃털을 뽑아 먹인다. 인간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정작 제 몸의 털끝 하나라도 다칠라치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제 몸을 바쳐 휴머니즘[]을 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위인이나 영웅 등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21세기 문명의 시대라 자부하는 현대에도 세계 어느 지역에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식을 팔아먹는 종족들이 살고 있다. 저들의 간고한 역사적 지역적 민족적 특성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끼의 여린 목숨을 살리기 위해 서슴지 않고 제 몸을 허무는 논병아리에게만은 면구스러운 일이다.

  요즈음 반려동물을 애호하고 있다. 그런데 반려견들이 주는 신뢰와 애정 표현 등, 위로만 얻으려 하지 말고 개의 본성을 제대로 알았으면 한다. 새끼를 낳고 돌보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견공들에게서도 장엄함을 넘어 숭고한 경외감을 느낄 만하다. 좁은 마루 밑에서 새끼를 낳은 어미 개는 잠시도 한눈팔 새가 없다. 눈도 트지 않은 강아지들이 낑낑대면 어미 개는 재빨리 새끼의 오줌을 받아먹고, 배설물을 일일이 밖으로 물어 나르곤 한다. 새끼들이 내지르는 똥오줌을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쯤은 어미 개들에게는 초보 상식인 셈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날로 늘어나는 미혼모, 미성년자 출산 등으로 방치되는 영유아들의 현상과 비교해 보면, 견공들이 보여주는 거룩한 모성애야말로 어미 사랑의 전범으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을 지경이다.

  낳자마자 1시간 이내에 일어서지 못하면 천적의 먹이가 되는 새끼를 위해 열심히 젖은 털을 핥아대는 어미 얼룩말, 영양, 사슴, 들소들, 헤아리자면 한이 없다. 그런 중에 인간이 있지 않는가! 지구의 유기체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어미의 보살핌을 받아야 겨우 개체로서의 몫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 그 인간의 탄생-성장-쇠퇴-소멸의 과정은 그야말로, 장엄함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생명이 보여주는 장엄함은 아름다움이며 거룩한 감동이다.

  그래서 모든 목숨들의 생명 활동은 처음 보니 귀엽고/ 다시 보니/ 장엄하다는 발견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렇게 아름답고 장엄한 생명 활동도 저녁노을을 맞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유한함 속에서도 끈기 있게 벌이는 쇠똥구리의 노작이 더욱 값진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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