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두메산골 부부의 사랑
어느 두메산골 부부의 사랑
  • 김규원
  • 승인 2022.04.2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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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문 광 섭/수필가
문 광 섭/수필가

코로나바이러스의 극성으로 생긴 하루 일과 중, TV를 켜고 매일 같이 보는 게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다. 연예인 윤택과 이승윤 씨가 소개하는 종편 방송 MBN이 제작하는 프로로 즐겨 본다. 이 가운데 강원도 해발 1,000m 가까운 산골에 61세 동갑내기 부부가 살면서 이루는 행복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부인인 B씨가 말하는 삶의 이야기가 평범한 말인데도 가슴에 와 닿았다.

 

이들 부부는 결혼 35년 차로 산중에 들어온 지는 4년이 조금 넘었다. 한때 커피숍을 10년 넘게 운영했단다. 한창 붐이 일던 시절에 일찍 시작해 좌석이 없어 손님을 못 받을 정도로 재미를 보기도 했는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사기를 당해 갑자기 어려움을 겪으며 사람들이 싫어졌다고 한다. 좋은 사람들이 90%인데, 나쁜 사람들 10% 때문에 삶이 고달팠다고 지난 삶을 돌아봤다.

 

고달픈 삶을 견디면서 두 내외는 어디 조용한 산골로 들어가 채전(菜田)을 가꾸며 각자 취미 생활도 하면서 노후를 멋있게 마무리하자고 결정했다고 한다. 2~3년 준비 끝에 10월 하순이 되면 얼음이 얼고, 추위가 일찍 찾아오는 깊은 산골로 삶의 터전을 마련했단다. 특히 부인이 꽃을 좋아해 꽃 정원을 만드는 게 꿈인데, 고지대인 만큼 고산 식물과 풀꽃 등 자연 친화적 꽃동산을 꾸며 피고 지는 꽃과 이야기하며 사는 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볕이 드는 창 쪽에 수십 개의 화분 속에서 그들의 꿈이 움트고 있는 게 보였다.

 

성격이 비교적 개방적이고 활달해 보이는 부인은, 프로그램 진행자가

깊은 산골에 두 분만사니까 외롭지 않으냐?”라고 묻자

커피숍 할 때 인생에서 만날 사람들을 대부분 만났기에 조용히 살고 싶어요!”라고 했다. 다시

두 분만사니까 싸울 일도 없겠네요.” 하니까

이웃이 있으면 비교하면서 투정이라도 부리는데,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자연히 좋은 점만 생각한다라면서

어떤 날은 종일 남편만 생각하며 지낼 때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무척 행복해 보이는 미소가 얼굴에 넘쳤다. 그때 거위 한 쌍이 날개를 펴고 다가와 법석을 떨었다. 거위의 행동은 무슨 일이 있느냐?’라고 거드는 것이란다. 그러자 강아지들도 덩달아 장난치며 거들었다. 약간 외롭고 무섭기도 할 거라는 내 생각은 좁은 소견에서 나오는 기우(杞憂)였다. 마침 옆에 서 있던 남편이

여기 와서야 날마다 삼시세끼 더운밥을 먹는다!”라고 거들었다. 그러곤 산악용 자전거를 끌고 나오더니

왕복 한 시간 거리의 정상까지 날마다 다녀오는 걸로 건강을 유지한다.”라며 산을 자전거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 이순(耳順)에 이른 동갑내기 부부,아직 한창인 그들이 아귀다툼의 도시를 떠나 확실한 행복을 누리는 결단과 서로를 아끼는 모습이 퍽 부러웠다.

 

그동안 나는 자연인이라는 프로를 통해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건강을 회복했거나 유지하면서 먹거리를 위해 스스로 농사짓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긍정적인 면을 보았다.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외롭게 살아가는 그 부득이한 선택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러나 생명과 맞바꾼 선택이었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들만의 삶이었음을 보았다. 사정상 혼자서 꾸려갈 수밖에 없어도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분들에게선 존경심이 일기도 했다. 그들의 생각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흔하지 않은 그들만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과정에서 애환과 정을 느끼고 자연의 위대함을 배우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본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자연과 함께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진심이 보여 부러웠다.

그들에겐 해발 1,000m, 일찍 찾아오는 추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로 바라보며 닮아가는, 순수하고 꾸밈없는 사랑이 그들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을 하루종일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다. 평범한 듯 위대한 그들의 사랑 앞에 나는 헛나이 만 먹은 철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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