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귀향
  • 전주일보
  • 승인 2022.04.2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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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반찬이래야 콩자반과 멸치다

밥 한 숟갈을 떠먹고 콩을 집었다

젓가락사이를 빠져나가 식탁 아래로 또르르 구른다

콩을 잡으러 젓가락을 내밀었더니

도망치듯 미끄러져 나간다 손으로 덥석 잡았다

또 밥 한 숟가락 떠먹고 멸치를 집었다 이놈도

젓가락 사이를 빠져 나간다

살아서 폴짝폴짝 식탁 밖으로 뛰어나간다

손으로 집어 꿀꺽 삼켰다

 

나는 몰랐다

콩이 콩밭이 그리워 콩밭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멸치들이 바다로 나가고 싶어

눈을 바다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이 번 주말에 고향에 다녀 올 테니

당신은 친정에 한 번 갔다 오지 그래

부모님들이 기다릴 텐데 그 말에

영문을 모르는 아내가 친정 쪽을 바라본다

내 마음은 벌써

청솔 밭을 지나 고향집 대문에 들어서고 있었다

 

원래 귀향歸鄕은 귀양이라 하여 고려와 조선 시대에 행해지던 형벌의 하나였다. 그 시대에는 죄인을 고향이 아닌 먼 변방邊方이나 외딴섬 같은 곳으로 보내 일정 기간 제한된 지역 안에서만 살게 하던 정배定配였다. 고려 시대의 귀향은 특수층의 범죄행위를 처벌하는 데 있어 다른 계층과 달리 일종의 우대조치로서 베풀었던 귀향과 관료 및 노비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각종 범죄행위에 적용된 법제 용어로서의 귀향이 있었다. 이에 반해 조선 시대의 귀향은 특수행정구역으로서 ''으로 유배한다는 의미가 있다. 대상 계층은 특수층을 비롯하여 양민, 양계의 진인진인 등 광범위하였다. 귀향의 경우 전정수급자田丁受給者에 대해서는 정전丁田을 몰수한 뒤 ''으로 보냈다. 최근의 귀향歸鄕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온다는 뜻으로 귀향이라는 말에는 울컥함이 묻어난다. 귀향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우선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을 단칼에 벨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도시 생활에 젖어 있는 가족들이 따라주어야 하고, 게다가 살 집을 장만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은 단순히 동물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태어난 고향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를 반기지 않고, 나를 잊어버린 고향은 타향과 다름없다. 귀향은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기에 거북이걸음으로라도 감행하는 것이다. 만남이란 서로가 그리워할 때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지 않던가. 요즘의 귀향이 옛날의 귀양이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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