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 계층과 함께사는 세상
취약 계층과 함께사는 세상
  • 김규원
  • 승인 2022.04.19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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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은 절기상 곡우(穀雨)이자 장애인의 날이다.

1년 농사 준비로 볍씨를 담가 못자리를 만들고 농기구를 챙기는 시기다. 못자리가 잘되어 모가 튼실하게 자라면 한해 농사가 순조롭다. 24절기 가운데 여섯 번째인 곡우에는 비가 넉넉히 내려 농사를 순조롭게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장애인의 날이 따로 정해진 건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고 백과사전에 기록되어 있다. 재활 의욕을 높인다는 뜻은 신체적 재활만 아니라 장애인이 세상과 어울려 함께 사는 데 의미를 둔 것으로 해석한다.

장애인, 신체적 정신적 결함으로 인하여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선천적 장애인도 있지만, 대부분 사고나 질병 등 후천성 장애인이다. 바꾸어 말하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두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대선이 끝난 즈음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가 다시 시작했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국비 지원, 장애인 평생교육원 운영비 국비지원, 장애인 활동지원 예산 투입, 모든 건물에 장애인 편의 시설 등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전장연이 바쁜 출퇴근 시간에 느릿느릿 지하철에 탑승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는 시위였다. 이 시위가 언론에 크게 조명된 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그들의 행위를 두고 공권력이 개입하여 행동을 막아야 한다는 발언을 한 데서 비롯했다.

이 대표가 325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상당수 시민이 불편을 느낀 이일에 공당의 대표가 나선 데 대한 반응은 비호감이었다.

전동 휠체어로 탑승구를 막아 탑승을 막은 행위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움직임이 어려운 가운데 생활해야 하는 이들에겐 불편 정도가 아닌 생존 문제였다. 과거보다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이웃이 아니다.

장애인들이 일반인처럼 쉽게 교통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사회에 적응하여 함께 사는 이웃으로 인식되기를 원하는 건 당연하다. 어쩌면 장애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차별이라는 주장이 타당하다고 본다. 사람이 얼굴이 다르듯 신체 구조도 다를 수 있지 않은가?

사고로 신체 일부가 손상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고를 당했으니 당신은 저만치 비켜서야 한다는 차별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면밀히 따져보면 모두 조금씩 장애를 지니고 산다.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조금씩 결함이 생긴다.

모두 크고 작은 장애를 지니고 살면서 서로 비교하고 차별하는 일은 원시사회에서나 통할 사고방식이다. 드러난 장애에 외면하지 않고 말을 걸어보며 착한 이웃으로 사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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