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정치와 참 언론, 그리고 역사 ,
참 정치와 참 언론, 그리고 역사 ,
  • 이옥수
  • 승인 2009.01.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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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 이번 연말연시는 우울했다. 국회 공전과 언론계 파업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많은 사람들은 국회가 파행을 겪는 상황을 보면서, 또 언론인들이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언론 장악 저지 투쟁'을 벌이는 것을 지켜 보면서 정치와 언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을 것이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정치(政治)란 글자부터 뜯어봤다. '정(政)'이란 글자의 본뜻은 바른(正) 점치기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을 바른 미래로 인도하는 게 참 정치란 얘기다. 그런데 어떻게 법안을 만들면서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따져보지도 않고 서명을 해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단 말인가.

겉으론 '국민을 위하여'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이 많은 것이다. 이는 단지 국회의원의 문제만 아니다. 기초의회와 광역의회를 가릴 것 없다. 법안제출 때 의원끼리 서로 서명을 주고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진정한 의미의 바른 미래를 고민하는 경우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언론의 보도 태도는 어떤가. 이번 국회 상황을 보는 각 언론사마다 입장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보도가 된다. 국민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평가가 너무나도 극명하게 갈린다.

언론이 바르지 않으면 사회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치는 지를 우리는 이미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권언유착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이미 보았다. 권세에 아부하지 않는 언론을 이야기할 때 흔히들 중국역사에 등장하는 동호(董狐)에 비유한다.

언론의 대 선배님는 '신문기자로서의 길'이란 글에서 동호 직필의 언론관을 강조하고 있다. "잘 살고 잘 지내려거든 신문기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빈한히 도골(到骨)하더라도 억강부약(抑强扶弱) 정의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인물이라면 기자가 되라. 기자의 자랑은 정의의 사도이며, 국민의 벗이며, 시대의 경고자와 역사의 추진자로서 자부하는데 있다. '있는 자'의 노예가 될 수 없고, 권력층의 수족이 될 수는 없다.

비굴하지 않고 천만인 앞에서 나가서 오직 정의를 높이고 부정을 격멸하고 현실을 폭로하고 선악을 구분비판하여 한 자루의 붓을 무기 삼아 사회를 명랑화시키는 데 사력을 다하는 것이 신문기자인 것이다."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정치권은 이제 모든 정책 앞에 '경제 살리기'를 갖다 댄다. 어떤 게 국민을 위하는 것인지 찬찬히 따져보자고 하면, 먹고 살기도 어려운 '비상 시국'에 무슨 다른 이유를 대냐고들 한다. 비상 상황을 오히려 부각시키는 언론도 있다.

마치 권력층의 수족이 되려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지금의 정치권과 언론계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니 선배님의 말하는 '신문기자의 길'이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점치기는 미래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과거의 것을 데이터로 삼아 분석해내는 결과물이다. 점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주역(周易)'이 그렇다. 언론이 정치권에 예속되지 않고 살아 있었을 때를 역사는 늘 태평성대로 기록하고 있다.

참 정치와 참 언론, 그리고 태평성대의 역사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부안=이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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