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찾는 고려인들의 정체성”
“우리말에서 찾는 고려인들의 정체성”
  • 김규원
  • 승인 2022.03.28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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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말을 잘 모르시는 할머니

제 고려말을 모르는 손녀이긴 하나

고려말을 하시는 수밖에

 

, 나자야!

너 저기 건너편을 보느냐?

늙은이가 바로 눈앞에 서 있는데도

못 본 척하고 앉아 있는 저 젊은이들

넌 그런 애는 아니겠지?

 

그러자 소녀는 펄떡 일어나

멀찍이 가 서서 간다

 

할머니의 타이름 때문이 아니었다

제 고려말을 하시는 할머니와

한 자리에 앉아 가기 부끄러워서였다.

 

-양원식(1932~. 카자흐스탄 거주 고려인 시인)

할머니와 손녀전문

  파블로 네루다는 자신의 시천상의 시인들에서 이렇게 힐난한다. “너희들은 무엇을 하였느냐, 지드주의자들아,/ 지식인들아, 릴케주의자들아,/ 신비주의자들아, 실존주의의/ 가짜 마법사들아, 무덤에서/ 붉게 타오르는 초현실주의의/ 양귀비들아, 서구화된/ 유행의 시체들아,/ 자본주의 치즈의 창백한/ 구더기들아, 너희들은 무엇을 하였느냐?/ 고뇌의 시대 앞에서,/ 이 암울한 인간 존재 앞에서,/ 이 걷어차인 평정 앞에서,/ 똥물에 잠긴 이 머리/ 앞에서, 짓밟힌 이 가혹한/ 삶의 본질 앞에서.”(전체 2연 중 1)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질곡(桎梏: 지나친 속박과 자유를 가질 수 없는 상태), 이 어려운 한자말 질곡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옛 형구(刑具)인 차꼬와 수갑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지만, 내치에서 오는 혼란과 핍박, 외침으로 인하여 송두리째 뽑혀 나간 민초들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질곡말고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을 듯하다. 아니 있기야 하겠지만, 섣불리 생살을 찢는 아픔과 고통, 인간다운 자유를 논한다는 게 사치스러울 정도로, 하나뿐인 목숨마저 지탱할 수 없이 휘둘려온 민초들의 삶은 글자 그대로 질곡의 삶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스탈린의 강제 이주 명령으로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버려진 동포들을 소위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일제 노예 생활을 피해 만주로 사할린으로 뿔뿔이 흩어진 동포들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또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된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무국적자가 된 고려인들은 그렇게 유랑 인이 되어 남의 나라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디아스포라-Diaspora’“‘흩어짐의 뜻으로, 팔레스타인 이외의 지역에 살면서 유대적 종교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뜻이 확장되어 쓰인다. 지금 살고 있는 나라에서도 이방인취급을 받으며, 자신들의 조국에서도 자국민대접을 받지 못하고, 그 경계에서 떠도는 유랑상태의 이민-난민-피식민지인들을 경계인이라는 뜻으로 일컫기도 한다.

  실제로 고려인들은 분명히 한국인의 혈통과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있지만, 중앙아시아에 버려진 이들을 대한민국이나 북한에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이야 형편없는 경제낙후로 그럴 여유가 없다손 치더라도, 이제는 세계 경제10대국을 왜장치는 한국에서마저, 이들 고려인을 외면한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어쩌다 가물에 콩 나듯 의식 있는 PD들이 이들, 고려인들의 생활상을 취재한 특집 영상물을 대할 때마다 보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저들의 간고했을 삶의 역정에 국가는 무엇을 하였던가? 과연 국가는 민족의 삶에 어떤 울타리가 되었던가? 생각할수록 분노와 치욕스러운 감정이 뒤얽혀 주체할 길이 없는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는 고뇌의 시대 앞에서, 암울한 인간 존재 앞에서, 가혹한 삶의 본질 앞에서과연 세계의 지성이라는 사람들, 이미 하늘나라[천상]으로 거처를 옮긴 시인들에게까지 다그치고 힐난하며 지청구를 해대고 있지 않는가?

  그런 어법으로 묻는다. 과연 국가는 나라를 잃고 만리타국에서 방황하는 동포들을 위해, 저들의 풍전등화처럼 깜박이는 목숨의 위협 앞에서, 눈보라 휘날리는 허허벌판에 버려진 존재의 암울함 앞에서, 과연 무엇을 하였는가? 대답이 궁색하기만 하다.

  국가는 이들-고려인들을 외면하였지만, 이들은 자신의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버릴 수 없었다. 자신들이 존재했던 혈통을 끊지 못했고, 자신들의 유전자처럼 각인된 전통문화를 버릴 수 없었다. 수십만 명의 고려인들이 같은 언어를 쓰며, 김치와 된장을 담가 먹으며, 그 질긴 생명력을 이어갔다고 한다.

  러시아말을 모르는 할머니나, 고려말을 모르는 손녀나 모두 저들의 잘못이 아니다. 제 피붙이를 끌어안지 못하고(안하고) 버려둔, 국가라는 이데올로기가 낳은 비극일 뿐이다. 세계사적으로 단일민족-단일혈통이라는 수식어가 비교적 걸림 없이 쓰였던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다. 그런 요소 중에 언어-우리말-고려말-한국어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고려인 후손들에게는 부끄럽고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들에게 우리는 동포로서 뜨거운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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