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해답은 질문 속에 있다!”
“인생의 해답은 질문 속에 있다!”
  • 김규원
  • 승인 2022.03.21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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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좋은 삶 54회

 

 

저녁 어스름

길에 나가 길을 묻는다

저기 마을 안쪽은 환한 스크린이다

사람들 크게 번지다가 사라진다

 

길 위에서

누가 길을 묻는다

그림자 길게 끄을며 아직 누가 길을 묻는다

 

-현담(1955~. 승려시인)전문

 

  수행하는 사람들에겐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언제부터 내 안에 자리 잡았을까? 짐짓 그럴까, 혼자서 생각해 보는 것도 심심파적[--破寂: 심심함을 잊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자 재미로 어떤 일을 함]은 된다.

  하나는 자기 각성을 위해 자기 길을 여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타인을 위해 바른길을 보이는 일일 것이다. 어느 것이 먼저랄 것은 없으나, 자기 길을 찾지 못한 사람이, 타인에게 바른길을 보여주기란 어불성설이며, 설사 자기 길을 찾았다고 할지라도 섣불리 타인에게 바른길을 제시하고자 나서지 않을 수도 있을 터이다.

  ‘확신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는 것을 전제로 왜장치는 확신이 실은 마음 안에 끼고 있는 색안경을 통과한 빛의 굴절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몸소 겪은 고행을 통한 깨달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몸으로 직접 터득한 진리라 할지라도, 섣불리 이게 바른길이라고 왜장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부지불식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미 내놓은 길을 따라가려 한다. 그런데 내가 새 길을 낼 수는 없는 것일까? 하긴 일찍이 미국의 시인 R.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서,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많은 사람이 가지 않아서 풀이 수북한 길을 갔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중에 그런 선택이 자기의 인생길을 바꿔 놓았다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길을 찾는다는 말을 듣게 될 때, 그것은 기존의 길, 남이 이미 내놓은 길이 아니라, 나의 길, 나만의 길을 찾는다는 뜻에서, 심연에 종소리가 울린다. 남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위험도 적고, 길을 찾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일도 없다. 찾는 길은 그런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길, 내가 가야 할 길,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나다운 나는 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 맞는 길을 어떻게 남이 뚫어놓은 길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시를 쓴 시인이 승려시인이라는 프로필이 시 읽기에 방해가 된다. 승려라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수행자로서의 길을 찾는 것인가, 아니면 우매한 중생이 수행자에게 길을 묻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전제를 지우고 그냥 이 간결한 시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시에 몰입한다.

  때는 저녁 어스름이다. 하루가 저물어 가는 때다. 하루가 짧은 단위이지만, 길다-짧다는 상대성을 갖기 때문에 어느 것이나 짧을 수 있고, 어느 것이나 길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생명의 인생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것이다. 그런데 길가에 나가서 길을 묻는다 했다. 앞의 길은 무엇이며, 뒤의 길은 무엇인가? 마치 손에 안경을 들고 내 안경 어디 있느냐?’ 묻는 형국이다. 실은 대부분 사람이 이런 형국에 처해 있다고 해서, 아니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는 데서 종소리가 울린다. 머릿속에서 맑은 풍경소리 같은 종소리가 나를 울린다.

  나는 길 위에 있으면서 길을 찾는 형국이 아닌가? 길을 딴 데 가서 찾지 말고 바로 길을 찾는 사람이 처해 있는 마을 안쪽에 있다는 암시로 들린다. 왜냐하면 그곳은 환한 스크린이 있다 했고, 사람들이 크게 번졌다가 사라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길은 사람의 길에 있다. 사람 사는 곳에 사람의 길이 있을 터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내 업보를 잔뜩 거느리고[길게 그림자를 끄을며] 아직도 길을 찾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길 위에있으면서 길을 찾는다.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끄을고 가면서 말이다. 그림자[운명 업보 인연]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언저리에서 길을 찾아야 할 터이다. 그도 아니라면, 아예 그림자 없는 세상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일까. 판단은 길을 찾으려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해답은 곧 질문 속에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만하다.

  시에 쓰인 의 원관념을 음미하다 길이 품고 있을 사전적 의미에 관심이 갔다. 국어사전[한글학회.어문각.1991]에는 무려 8가지에 이르는 딸림 의미를 풀어내고 있지만, 언중들의 일상 담화에서 쓰이는 길의 의미는 국어사전이 일일이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시는 하나의 어휘와 하나의 문장 속에 더 많은 은유의 맥락과 함축적 의미를 담아내고자 애를 쓰는 문학 양식이다. 그러나 시인이 아무리 많은 의미를 꾸려 넣는다 할 지라도 언중들이 부지불식간에 부려 쓰는 말들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렇다. 시는 결국 언중의 말들을 주워 담는 도구일 뿐이라. 이 작품 역시 길을 묻는 언중의 말을 경청하다 한 편의 시를 발견하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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