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꾸미기에만 열심인 세상에 살며
겉꾸미기에만 열심인 세상에 살며
  • 김규원
  • 승인 2022.03.20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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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춘분날 아침을 위해 이 글을 적어가는 마음이 퍽 불편하다. 춘분(春分)은 밤이 길던 겨울이 완전히 끝나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다. 이날부터 낮이 점점 길어지고 밤이 짧아져 일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남반구에서는 반대로 밤이 점점 길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춘분은 태양이 적도(赤道) 바로 위에 비치는 날로 이날부터 점점 북반구 쪽으로 기울어 비친다.

춘분은 비로소 낮과 밤의 길이가 균형을 이루어 잠시나마 공평해지는 순간을 지나는 날이라는 의미도 있다. 지난 대선 내내 공평과 공정이 무너진 나라를 바로 잡겠다고 외치던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 당선되었다. 국민은 그의 말대로 공정과 공평이 이루어져 기울어진 운동장이 비로소 균형을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는 세상

요즘은 온통 겉만 그럴싸하게 꾸미는 세상이 되었다. 속이야 썩어 문드러졌든 곪아서 통증이 사무치든 알지 못한다. 웬만하면 얼굴에 칼을 대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렵고 하다못해 레이저 시술이라도 받아서 기미나 검버섯을 지워 매끈하고 고와 보이는 얼굴을 들고 다닌다. 그래야 세상사는 사람의 일원으로 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아는 이상한 세상이다.

겉 볼 안이라는 짤막한 경구를 생각한다. 일본에서 온 말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겉을 보면 속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실제는 절대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실감한다. 그 쓰임새를 생각하면 아마도 일본에서 건너온 말일 듯하다.

겉으로 싹싹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이는 그들의 행동은 음험한 심사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다. 일본의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친절해 보이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늘 칼이 들어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안다.

그런데 요즘 우리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자주 받는다. 얼굴에서부터 발끝까지 말끔하게 꾸미고 집안도 먼지 한 톨 발견할 수 없이 깨끗하게 치우고 산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니 환경도 따라서 좋아졌다고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가슴에서는 전혀 인간미를 느낄 수 없고 정()을 느낄 수 없다.

말과 행동이 본심과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속내를 짐작할 수 없다. 자기의 몸조차 겉보기에만 치중하여 복근을 키우고 그럴싸한 체형을 만드는 데 힘쓴다. 울룩불룩한 몸을 만들면 건강도 따라온다고 생각하는지 근육 만들기에 열심이다. 몸만 번지르르하게 꾸미는 게 아니라 마음도 겉마음만 꾸며 화사하게 치장한다.

자기 본연의 마음을 눌러 감추고 남의 경험과 체험을 내 것인 양 착각하고 자아를 잊어버린다. 그러면서 자아를 잊어버린 줄도 모르고 산다. 그러다 보니 강한 자극에 몸이 반응하고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아 탐닉(耽溺)하는 이상한 습성에 젖어 든다. 그러나 내가 그런 강한 자극을 만날 수 없으므로 점점 미디어를 통한 대리만족에 빠져든다.

최근에 지상파를 비롯하여 각 종편 채널이 다투어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거의 이색 체험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엄청나게 많이 먹는 사람들, 극한 상황에서 먹거리를 구해 끼니를 해결하거나 노동으로 식자재를 구해 먹은 프로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을 먹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먹거리를 구하는 자극이 없으면 프로그램은 성공하지 못한다.

유튜브를 통한 개인 방송은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먹는 방송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갖가지 자극적인 내용이 방송된다. 조회 수가 늘어야 돈이 들어오므로 해괴한 짓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자극적인 내용에 막대한 금액을 보내주며 더욱 강도 높은 방송을 요구하는 청소년의 행동이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내 본성을 찾아야 할 때

누군가는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표현했을 만큼 온통 자극적이고 섬짓한 행동과 말이 제멋대로 터져 나오는 세상이다.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었던 일도 더 자극적인 표현, 공격적 언사가 많았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말보다 자극적이고 선동에 가까운 말로 요즘 사람들의 심사를 건드린 게 주효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감정은 본연의 감성이 아닌 겉꾸미기 감성이 지배한다. 거의 잃어버려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다. 포장된 외형으로 살다 보면 타고 난 감정은 저절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분노할 일에 웃음이 나오고 슬픔이 가득한 얼굴을 보고 박장대소하는 감정을 보인 적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이 자꾸만 커지고 각종 미디어가 보여주는 남의 체험과 극한적인 자극에 본연의 감성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다. 남의 체험과 비정상의 감정이 내게 이입되어 나를 지배하고 그런 감정에 동화하여 동류화한다.

나도 모르게 격정에 휩쓸리고 몰입하여 좀비zombie가 오로지 피 맛을 찾아 움직이듯 이성을 잃고 산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 내 생각이나 가치관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려두고 타인의 가치와 행동에 쉽게 동화하여 무리에 끼지 못하면 절망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차분하게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반듯하고 깨끗한 이미지 속에 감추어져 있는 본연의 나를 깨워 지금의 나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관찰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주장에 헛되이 휩쓸리지 않았는지, 막연하게 좋아서 따라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기도 필요하다.

누군가를 따라 하거나 휩쓸리기 이전의 나를 찾아보면 퍽 유치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유치한 내가 바로 본래의 나이다. 정을 알고 그리움과 인간 본연의 사랑을 아는 나를 찾는 작업을 시작할 때다. 꾸며지지 않은 나, 가슴 깊은 곳에서 세상 밖으로 나서지 못한, 착하디착한 를 위해 TV를 꺼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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