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회귤懷橘
구멍가게에서 귤 만 원어치를 샀다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주인아주머니가 옛날부터 아는 사이인 것처럼 반기더니
귤을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는다
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자
세종대왕님의 얼굴을 받아들더니
귤 몇 개를
덤으로 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팔면 밑지지 않느냐는 내 말에
밑지지는 않아요 덜 남지요
사는 일은 사고파는 일이냐며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비닐봉지 속 귤들을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시큼하고 달콤하고 저마다 다른 맛은
우리 식솔들의 얼굴인 양
지친 내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봄이 올 때까지 부패하지 않을 귤이
서귀포에서 왔다며
초승달로 떠 어머니의 굽은 등을 비추고 있었다
중국 삼국 시대 오군吳郡 사람인 육적陸績이 원술元術의 집에 갔을 때 귤 세 개를 먹으라고 주었다. 육적은 그것을 품속에 감추고 하직하는 순간 그것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원술이 귤을 숨긴 까닭을 묻자 육적은 어머님이 귤을 좋아하셔서 어머님께 드리려고 그랬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의 효심孝心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이를 회귤고사懷橘故事 또는 육적회귤陸績懷橘이라고 한다.
‘노계집盧溪集’에도 필적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박인로朴仁老(1561~1642)의 조홍시가早紅?歌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 하나이다” 선조 34년(1601), 노계盧溪 박인로朴仁老가 한음 이덕형의 집을 찾았다. 그때 일찍 익은 감이 소반에 담겨 나왔다. 그것을 본 노계는 문득 중국 후한 때의 육적회귤陸績懷橘 고사를 떠올리며 노계는 어버이를 생각한다. 그러나 감을 품어 가져가도 반길 부모님이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불효를 후회한다는 조홍시가早紅?歌의 내용은 조선시대 문헌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서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