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풍패지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다
전주 풍패지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다
  • 김주형
  • 승인 2022.02.2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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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 풍패지관(전주객사) 발굴조사 거쳐 규모와 축조 내력, 변천과정 밝힐 자료 확보
- 월대(月臺)와 봉황무늬수막새, 분청사기 등 조선전기 유물과 함께 고려시대 명문기와도 출토
- 유물과 건축흔적, 기반조성층을 통해 고려시대부터 풍패지관(객사)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

전주 풍패지관(객사)이 고려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발굴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특히, 고려시대 객사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강릉 임영관터를 제외하고는 알려진 사례가 극히 드물어 전주객사의 문화재적 가치와 천년고도 전주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주시는 풍패지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규모와 축조내력, 변천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 결과 월대(月臺, 궁궐 혹은 정전 등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시설과 월대시설 남쪽으로 연결된 중앙 계단지, 월대 주변의 박석시설 등의 유구가 확인됐다.

유구 안에서는 봉황무늬수막새와 분청사기 등 조선시대 전기의 유물이 출토돼 풍패지관의 본래 형태와 건립연대, 위상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풍패지관 건물 남쪽에 동서 길이 17.5m, 남북 너비 5.2m 규모인 월대시설은 조선후기의 고지도를 통해 존재 가능성이 추정돼 왔으며, 이번 발굴조사에서 처음으로 그 전체 모습이 확인됐다.

또, 월대 내부에서는 분청사기편이 출토됐으며, 이를 통해 이 월대는 15세기 무렵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계단은 월대시설 남쪽 중앙에 설치돼 있으며, 너비는 2m다. 발굴조사 결과 한 단만 잔존하고 있으며, 끝에는 계단 발판 1열이 추가로 확인됐다. 박석시설은 월대와 계단시설을 중심으로 남쪽과 동쪽에 집중적으로 확인됐다.

조선시대 월대시설과 박석시설 아래는 고려시대의 대지 조성층과 통일신라시대의 대지 조성층도 확인됐다.

특히 고려시대 대지조성층에서는 동익헌 남쪽에서 고려시대 초석건물지의 유구가 확인됐으며, 그 주변으로 ‘전주객사 병오년조’의 글자가 찍힌 고려시대 기와편과 상감청자편, 일휘문수막새, 건물벽체편, 전돌 등이 출토됐다. 이 유물들은 전주객사가 고려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증거라는 것이 발굴조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전주객사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기록으로는 고려시대 문신이었던 이규보가 전주목의 관리로 부임했을 때인 1199~1200년 무렵 전주객사를 배경으로 지은 시문이 동국이상국집에 전해지고 있다.
 
이 기록을 참조하더라도 전주객사는 적어도 1199년(고려 명종 25년)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대지 조성층에서 적심석기초(생땅이 나올 때까지 기초웅덩이를 파고 적심석(積心石)이라고 하는 자갈을 층층이 다지면서 쌓아 올리는 기초)의 흔적과 함께 ‘官’자명이 찍힌 선문기와, 완(토기) 등도 출토됐다.

통일신라시대 대지 조성층은 풍패지관 외에도 전라감영과 경기전 등 전주 구시가지 일원에 폭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완산주 설치와 함께 대규모 토목공사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시는 이번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올 연말까지 풍패지관의 복원계획과 문화재로서의 위상 강화 방안 등을 담은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김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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