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 전주일보
  • 승인 2022.02.0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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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아카시아는 시들어 있겠지

주가는 떨어지고,

세금은 올라 있겠지.

2년 후

방사능은 더 늘어있을거야

2년 후.

2년 후.

 

2년 후

양복은 누더기가 되고,

진실은 가루가 되며,

유행은 바뀌어 있겠지.

2년 후

아이들은 애늙은이가 되어있을거야.

2년 후.

2년 후.

 

2년 후

난 목도 부러뜨리고

팔도 부러뜨린 채

얼굴마저 박살이 나 있겠지.

2년 후

우리는 결혼하자.

2년 후.

2년 후.

-요셉 브로드스키(1940~1996. 러시아)서정시전문

2년 후는 고사하고 당장 내일 일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다. 그럼에도 십년 후, 이십 년 후, 아니 죽는 날, 그 아득하고 까마득하여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아제(‘내일이라는 한자에 대체한 우리말)를 기대하며 오늘을 사는 게 인간이고, 인간사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2년 후일까? 1년 후도 아니고, 10년 아니면 백 년 후도 아닌 2년 후일까? 그리 골치 아프게 생각할 것도 없다. 그것이 바로 이 시를 쓴 이의 서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정시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 서정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알면 궁금증은 더욱 아무 것도 아닌 일상사가 된다. 서정은 주로 예술 작품에서 느끼거나 겪은 감정이나 정서를 뜻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느낌-겪음-감정-정서-정조. 느낌은 외부 작용으로 인하여 사람의 내면에 오는 파동을 말한다. 외부 작용이 어디를 통하여 오는가? 바로 오감 혹은 육감이다. 시청촉후미視聽觸嗅味 그리고 영감을 통하여 느낌이 전달된다. 그 외부 작용에 일정한 반응이 바로 그 사람의 느낌이 된다. 이런 과정에서 겪음곧 경험 혹은 체험이 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과정이 사람의 내면에 축적되면서 일정한 감정을 촉발하고, 그 촉발된 감정이 일정한 방향성이나 호불호 등의 선택적 기능성을 가질 때 정서가 형성된다. 그 정서가 인간의 정신활동에 따라 고차원적이고 복잡하게 고양되는 감정이 곧 정조情操.

이렇게 본다면, 이 시의 화자가 ‘2년 후에 벌어질 일들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내용들은 이 시인의 정서의 산물이며 정조의 결집이다. 그런 정서를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시대를 보는 안목의 차이, 각자가 처한 상황의 다름, 세상과 인간을 보는 관점, 그리고 마침내 지향하고자 하는 이상의 변별성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아카시아가 시들고, 주가가 떨어지며, 세금이 오르는 것은 눈에 불을 켜며 따지고 불안해 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을 옭죄는, 치명적인 위험에는 무관심한 것이 우리다. 눈에 보이고 당장 삶에 영향을 주는 것들에는 살벌할 만큼 치열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은 외면하는 게 우리다. 원자력발전소를 없애는 것은 고사하고, 노후 원자로를 폐쇄하는데도 한사코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치명적-방사능이 쏘이지 않는 것일까?

양복이 누더기가 되는 것, 진실이 가루가 되는 것, 유행이 바뀌는 것은 지대한 관심사지만, 그러는 사이에 인간은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세월의 고속열차를 타고 있다는 진실-그래서 일상에서 상상력 넘치는 꿈이 없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애늙은이로 살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세상과 사람들,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애늙은이일 수밖에 없음을, 아프지만 인정하게 하는 진술이 바로 ‘2년 후가 아닌가!

목도 부러뜨리고, 그래서 얼굴로 대표하는 자기 존재성을 찾을 길 없는 막막함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 팔도 부러뜨린 채, 그래도 무엇인가 해야 할 과업이 인간-인류에겐 남아 있다. 바로 결혼하자는 이 외침은 매우 처량하지만, 일말의 안간힘을 쓰는 인류의 모습으로 읽힌다.

세상을 망하게 하는 데는 굳이 2년까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단지 몇 발의 핵폭탄을 개발했으니 금방이라도 핵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설레발을 치는 강대국들은 정작 지구를 몇 개는 부셔버리고 남을 만한 핵무기를 쌓아놓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강대국의 최고 통치자 중에 어떤 정신병자가 나타나서 블랙박스의 핵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세계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다. 그래도 우리[인류]는 사랑해야 한다. 이 서정시의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닿아 있다. 2년 후는 고사하고 당장 핵폭탄이 터진다할지라도 서로 사랑하고 결혼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진실이 가루가 된다할지라도 우리[인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팔다리-얼굴이 뭉개지고 사라진다할지라도 우리[인류]는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우리 인류가 영속되고, 그 영속되는 세계 속에서 사랑의 씨앗이 발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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