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역설과 반어는 시의 무기이자, 신의 한수다”
“반전-역설과 반어는 시의 무기이자, 신의 한수다”
  • 전주일보
  • 승인 2021.11.2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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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 모퉁이

~~ 하게 서있는 돌절구 하나

 

물 받아 어리연 심을까

보라꽃 담뿍 피는 부레옥잠 심을까

 

어젯밤 소낙비, 천둥번개

부서져라 치고 내려오더니만

 

오늘 아침, 그 안에

앞산도 하늘도 동그랗게 피어있네

 

-최정숙(1959~ 전북 정읍)돌절구전문

 

  이런 분이 있다. ‘~있었다는 과거형이 아니라 ‘~있다라고 현재형을 쓴 이유는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단하다[여기에서 대단하다는 사람살이가 매우 힘들다는 의미에서]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이분의 남편이 정년퇴직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부부는 국공합작이라도 하듯이, 부창부수라도 하듯이 탈서울을 모의하고, 결심하고, 결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남편과 아내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부안에 귀촌해 말 그대로 들꽃처럼살고 있다.

  이 부부가 탈서울, 환고향, 귀촌을 결행하면서 두 가지를 이루고자 하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친자연 생활을 하자는 것이었다. 부부는 조그마한 시골집을 정하자마자 집 앞에 둘러싼 돌담부터 허물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담이 서 있던 자리와 앞마당에는 온갖 꽃들을 심었다. 철 따라 바뀌는 꽃들의 이력을 찾아 안성맞춤으로 자리 잡은 꽃밭은 조그마한 시골 동네의 인상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아내는 꽃밭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면, 남편은 혼자 힘으로 버거울 법한 뒤꼍 텃밭에 갖은 채소를 심어 가꾸었다. 도시생활을 하며 항상 걱정하던 먹을거리를 생각하여 무농약-유기농으로 재배하려니 오죽 힘들었을까? 그래도 부부는 힘든 노동을 아름다운 꽃밭을 감상하며 위로받았으며, 조촐한 채마밭의 수확을 친인척 이웃들과 나누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에 맛을 들인 것이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두 번째 소망도 부부가 함께 이루어갔다. 그것은 문화예술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것이었다. 말의 씨앗을 심고 가꾸기 위해 남편은 문화해설사자격증을 획득하여 생거부안生居扶安으로 유명한 부안지역의 문화관광해설사 노릇을 알차게 펼쳐내고, 아내는 지자체의 각종 문화예술 체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인생 2모작을 충실히 경영하고 있다.

  부부가 귀촌하여 전원생활을 합목적적으로 완벽하게 해내는데 정점을 찍은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부가 함께 시 창작 교실에 입문하여 문학소녀-소년의 꿈을 착실하게 다져가는 일이다. 전원생활이 그랬듯이, 이들 부부는 무엇이든지 결심하고 실행하면 중도에서 그만 두지 못하는 성정임이 분명해 보였다. 필자가 진행하는 시 창작 교실에 금년 3월에 첫발을 디디더니 반년이 불과한 시점에 부인은 앞에 보인 좋은 시를 생산해 냈다.

  행복론자요, 행복 연구가이면서, 심지어 행복 전도사로 불리는 마틴 셀리그만은긍정 심리학에서 행복은 개별적 즐거움과 개인의 소망과 연관이 깊다고 했다. 동시에 추구할 만한 가치를 지닌, 특정한 일의 성취를 통해서 의미 있는 행복이 가능하다고 했다. 셀리그만의 지론에 따르자면, 이들 부부는 전원생활을 통해서 개인의 소망을 성취하고 있으며, 삶의 즐거움을 수확하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문예 교실에서 거두는 시 창작을 통해서 가치 있는 행복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시를 만나려는 깊이 있는 관찰의 힘과 이를 통해서 얻어낸 직관과 통찰을 심미적 언어로 다듬어내는 솜씨가, 문학소녀 이래 쉬지 않고 문화예술에 관한 호흡을 유지해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 사람의 언어생활의 질량은 그대로 그 사람의 개인사적 내력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하다. 사람의 언어 말고 무엇으로 한 사람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작품 전체가 기승전결 4단 구성의 내적 필연성을 곡진하게 드러낸다. 그러면서 결구에서 반전을 일으켜 역설과 반어라는, 시문학이 장착하고 있는 특별하고 아름다운 무기를 서슴없이 드러낸다. 이것은 시를 끌어내는 사색[시심]의 깊이도 의미 있지만, 이를 담아내는 언어미학의 간결성도 효과를 발휘하는 대목이다.

  1[起句]의 진술은 2[承句]과 합세하여 시적 화자가 전원생활의 주인공임을 짐작하게 한다. 어리연을 심을까, 부레옥잠을 심을까, 궁리가 심한 것은 꽃밭 동산을 가꾸면서 누리는, 귀촌 부부의 개인적 즐거움이다. 그대로 귀촌하지 못한 도시인이었다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해결책을 바로 3[轉句]에서 내놓는다. 소낙비 천둥 번개가 해결책이었다. 전원생활의 단꿈에 빠져 있던 부부에게 의외의 복병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4[結句]에 이르면 돌절구가 어리연 부레옥잠보다 한 수 높은 앞산도 하늘도동그랗게 피워놓았다. 돌절구마저 하늘 꽃을 피울 줄 안다는 반전, 이것은 이들 귀촌 부부의 즐거움에 더하여 가치 있는 성취를 통해 행복한 삶을 완성시키는, 신의 한 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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