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
격세지감
  • 이옥수
  • 승인 2008.12.29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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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대폭락 전국민 울린 펀드 열풍  

 2008년 한 해를 돌아보면 참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국제금융환경과 경기침체로 힘들었던 한 해였다. 

 부동산 시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불과 수년 전 참여정부 시절에는 연일 투기장세가 펼쳐졌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만 가는 아파트 값에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은 참 살 만한 시절이었다. 자고 나면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씩 자산가치가 늘어나니 그처럼 좋은 시절이 어디 있었겠는가? 말 그대로 부동산 전성기였다. 

 정부가 나서 온갖 투기방지 대책을 내놨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아마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강력한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미 불이 붙은 투기바람을 잡을 수가 없었다. 

 돈 없는 서민들은 죽을 맛이었다.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오르는 아파트 값에 내 집 마련을 포기해 버렸다. 당시에는 허탈감과 상대적 박탈감에 슬퍼했던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사람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국제금융위기 쓰나미가 덮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새 정부가 나서 부동산 시장을 살려보겠다고 투기책에 버금가는 규제 완화책을 내놓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가 돼 버렸다.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 대출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자산이 반 토막 나고,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죽을 지경다. 대출받을 땐 그렇게 친절했던 은행 대출창구는 빚 상환 독촉에다 가압류, 경매로 위협한다. 

 건설회사도 마찬가지다. 투기바람이 불자 여기저기 아파트를 지어 큰돈을 벌었다. 분양가 경쟁이라도 하듯 분양가를 올려 투기심리를 부추겼다. 모델하우스만 열면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한마디로 돈방석에 앉았었다. 

 지금은 어떨까. 투기열풍이 사라지고 미분양이 쌓여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에, 은행권에 살려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다. 전국 곳곳에 널려 있는 수십만 가구의 주인 없는 아파트가 주원인.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 투기열풍의 진원지였던 건설회사와 금융권, 투기꾼들은 요즘 참 힘이 들게 됐다. 

 문제는 서민들이다. 서민들의 삶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줄 알았던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괴물이 나타나 그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미국 달러와 두메산골 할머니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국제금융위기, 환율, 달러 이런 복잡한 것들은 들어보지도, 알지도 못하며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의 삶도 힘들게 만들었다. 

 서민들은 죽을 맛이다. 내려올 줄 모르는 소비자 물가, 고금리, 실직, 취업난 등 정말 살기 힘든 한 해였다. 대출받아 산 집은 애물덩어리로 전락했다. 대출이자를 견디지 못해 아파트를 팔려고 내놔도 공인중개업소에선 묵묵부답이다.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전국민을 투기 열풍으로 몰아넣은 것이 또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펀드가 그것이다. 어린 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펀드계좌 한 개씩이 있을 정도로 펀드는 대세였다. 주부들이 모여도, 술자리에서도, 공사 인부들의 현장에서도 펀드이야기가 화제였다. 펀드계좌를 갖고 있지 않으면 왕따를 당했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였다. 

 하지만 모두 망했다. 적금 해약해,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담보로, 퇴직금 중간정산해 마련한 돈으로 펀드에 투자했다. 물론 경기가 좋았을 때는 돈도 벌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반 토막이 났다. 포기와 절망의 상태. 

 배럴당 최고 200불까지 예상했던 국제유가는 국제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30불도 위협받고 있다. 세계 경제를 이끌던 글로벌 기업들도 국제금융위기 앞에 손을 들고 말았다.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실물경기 침체도, 부동산 폭락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2008년이 저물고 있다.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한 해였다. 참 힘든 한 해이기도 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한 해였던 것 같다. 

 이제 기축년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그래서 우린 또다시 격세지감을 꿈꾸고 있다. 국제금융시장, 실물경기, 부동산 시장이 안정돼 격세지감을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새해가 기다려진다.  부안=이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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