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여정은 누구에게나 가을여행이다.”
“인생 여정은 누구에게나 가을여행이다.”
  • 전주일보
  • 승인 2021.11.15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운사 쉼터에

일행 중 할머니 한 분

물끄러미 핸드폰을 비켜 놓으며

 

아이고~시상에

~일 전화 한 번 안 울어야

참말로 이 물건,

이리 살아 뭣에다가 쓴다냐?

 

선운산 하늘에

늦가을 붉게 흐르고

오후 한나절, 한 무더기 뭉게구름을

골바람이 채어간다

 

-김진복(1959~ 전북 남원)여정전문

 

 

제목 여정은 여정[旅程-여행 중에 거쳐 가는 길이나 여행의 과정]일까, 여정[旅情-여행할 때 느끼게 되는 외로움이나 시름 따위의 감정]일까, 아니면 여정[餘情-마음속 깊이 남아 잊을 수 없는 생각이나 가시지 않는 감정]일까, 그도 아니리면 여정[女情-여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정서 즉 감정]일까?

제재이자 제목의 여정에 한자를 병기하지 않았으니, 도무지 짐작할 길이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적 진술이 담고 있는 맥락을 따라가다 보니 짐작할 만한 서정의 자락이 보이기도 하고, 또 그 자락을 펼쳐보니 우리네 삶의 실상들이 조각보처럼 알록달록하게 보이는 게 쏠쏠한 재미를 준다.

하긴 시詩가 지닌 태생적 특질이자 장단점을 이 제목 여정이 담고 있는 셈이다. 우선 단점으로는 모든 시가 그러하듯이 시어의 함축성 문제를 이 작품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하나의 시어에 왜 그렇게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하나의 보조관념에 왜 그다지도 다양한 원관념을 내포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이런 문제는 그대로 시의 난해성 문제와 직결된다. 그나마 이 작품은 난해성 문제를 조금 비켜선듯하여 다행스럽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단점이 그대로 장점이 된다. 하나의 시어[보조관념] ‘여정이 이토록 다양한 의미와 원관념을 지닌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우리의 사고는 단순한 구구셈에는 곧장 싫증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심미적 대상은 더욱 그러하며, 시문학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심지어 시에 있어서 난해성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을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은 난해성을 비켜 가면서, 함축성 짙은 시의 세계를 펼쳐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시를 감상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시를 매우 친근감 있는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힘을 갖추고 있다.

여정을 旅程으로 읽으면 시적 자아의 선운산 여정과 시적 대상인 할머니의 선운산 여정이 교차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우연의 일치지만 필연적 이유도 있다. 둘 다 선운산 가을 나들이를 하고 있다. 선운산은 미당의 시로 인하여 고색창연한 동백꽃밭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가을 경치의 명승지로도 유명한 관광지다.

단풍은 물론이요, 가을에 만발하는 꽃무릇은 국내 가을꽃 경승지로 손꼽아 자랑할 만하다. 그런 관광명승지에서 시적 자아와 시적 대상이 조우함으로써 이 시가 탄생하게 된 셈이다. 그래서 여정은 旅程으로 풀어 읽어도 좋다.

여정을 旅情으로 읽으면 시적 자아와 시적 대상의 또 다른 면모가 읽힌다. 시적 자아는 오후 한나절을 자발적 고독 속에서 가을 산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 ‘한 무더기 뭉게구름을/ 골바람이 채어간다는 진술은 시적 자아의 내면 풍경을 그래도 쓸쓸함으로 채운 서정의 울림이다.

시적 대상인 할머니의 시름은 이에 비해 좀 더 노골적이다. ‘참말로 이 물건,/ 뭣에다 쓴다냐?’라며 자신이 처한 외로운 감정을 토로한다. 이런 외로운 정서에 빠지게 된 원인이 바로 죙일 전화 한 번 안 울려서. 그래서 여정은 旅情으로 읽어도 좋다.

여정을 餘情으로 읽으면 시적 대상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을 법한, 잊을 수 없는 생각이나, 가시지 않는 감정을 드러내고 있음이 보인다. 시적 대상인 할머니가 스스로 고백하는 이 물건이 표면적으로 가리키는 바는 핸드폰이지만, 그 속내는 섭섭한 감정의 찌꺼기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할머니의 속내는 아마도 이럴 것이다]이 늙은이를 효도 관광이라고 보내놓고서 그래 잘 도착했느냐는 둥, 구경 잘하고 계시느냐는 둥, 그도 아니면 점심은 맛있는 메뉴로 잘 드셨느냐는 둥, 그도 아니면 장거리 여행에 피곤하시거나 불편한 곳은 없으시냐는 둥’, 전화 소리 한 번 울리지 않는 이 물건[핸드폰]이나. 헛인사일 망정 안부 한 꼭지 전할 사람 없이 사는 이 물건[-늙은이]가 살아 뭣에 쓰느냐고 탄식할 법하다. 그래서 여정은 餘情으로 읽을 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외로움의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여정을 女情으로 읽으면 아연 색다른 공감의 파장이 인다. 할아버지가 똑같은 처지에 놓였다면, 그 반응이 어떠했을까? 모르면 몰라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그냥 먼 산 보기로 치부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의 섬세하고 여린 감정이 빚은 이 한 폭의 축약도를 바라보면서 인생 여정은 누구에게나 가을 여행임을 실감하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