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까지 백 번 써오라는 숙제
100까지 백 번 써오라는 숙제
  • 전주일보
  • 승인 2021.10.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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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 만/수필가
이 용 만/수필가

세상을 살다 보면 힘써서 했던 일이 별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그것이 소중한 줄 알고 정성을 다해서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기를 쓰고 열심히 할 일이 아니었다는 후회스러운 일들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선생님께서 힘겨운 숙제를 내주셨다. 그것도 반장이 전해준 숙제였다.

종일 자습을 했는데도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선생님이 교실에 오지 않으셨다. 반장이 숙직실로 가서 선생님을 불렀다. 그리고 수업이 끝났다고 알렸다. 그랬더니 그럼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반장이 한 마디 더했다. 숙제가 무엇이냐고. 그때는 숙제가 곧 집에서 하는 공부였기 때문에 매일 숙제가 있었다. 선생님은 쉽게 대답하셨다.

“1에서 100까지 백 번 써와!”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숙제를 시작했다. 밤이 깊도록 쓰고 아침에 또 했다. 식구들이 아침밥을 먹고 들로 일을 하러 나갈 때까지 밥도 먹지 않고 숙제를 계속했다. 겨우 숙제를 마치고 학교로 달려갔다. 아침밥은 먹을 틈이 없었다. 쓰고 또 써도 100번은 많은 양이었다.

그날 숙제를 다 해온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나는 힘은 들었지만 자랑스럽게 숙제 검사할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날 숙제 검사를 하지 않으셨다. 아마 숙제를 냈다는 것도 잊으신 것 같았다.

그날 나는 괜히 숙제를 다 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그동안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숙제를 해왔는데 그날만은 왠지 숙제를 다 한 것을 후회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의미 없는 숙제였다. 그냥 숙제를 내기 위한 숙제였다. 그것을 다 한다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것은 공부도 아니었다. 3학년이었으니까 100까지의 수를 다 알고 있었다. 연필도 노트도 귀하던 시대에 그것도 아까웠다. 쓸데없는 낭비였다. 선생님의 성의 없는 숙제 제시는 나를 힘들게 했고 실망하게 하였다. 그날 숙제 검사만 했어도, 그래서 나 혼자만 다 해온 숙제에 대한 칭찬만 받았어도 이렇게 섭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B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학창 시절에 어려운 숙제는 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저는 그런 숙제는 하지 않지요. 차라리 한 대 맞고 말지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100까지 백 번을 쓴 것이 더 후회 되었다. 나는 두고두고 그 숙제를 한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밤을 새워가며 일에 매달려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100까지 백 번 쓰는 일처럼 쓸데없는 일에 매달리는 일이 허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숙제에 대하여 하나의 교훈으로 삼을 수는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절대로 그런 숙제는 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십을 넘은 제자와 차를 마시며 내가 100까지 백 번 쓴 숙제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도 백 가지 하라는 숙제를 냈었습니다.”

깜짝 놀랐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5학년 때, 방학 숙제로 나라 이름과 수도 이름을 100개 외워오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숙제를 완벽하게 해온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여러 아이 앞에 나와서 외워보라고 하시면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외워두었던 나라 이름과 수도 이름이 차후 학습에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거의 다 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숙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기는 하였지만 나도 그런 숙제를 냈다는 것이 한심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때의 숙제처럼 쓸데없이 시간과 물자를 낭비하는 일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는 그게 잘못된 일인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얼마쯤의 세월이 지나간 다음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번번이 모르고 넘어간 것이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면서 100까지 백 번 쓰는 일에 매달리는 일이 또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과감하게 생략하리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100까지 백 번 써오라는 숙제를 착실히 했던 일은 현명한 짓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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