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천, 전주천을 걸으며
삼천천, 전주천을 걸으며
  • 전주일보
  • 승인 2021.10.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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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승 찬/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박승찬/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전주에서 생활한지 2년여가 되어간다. 시간의 흔적이 쌓인 풍경 때문인지 여유로움 때문인지 웬만하면 걸어 다녔다. 가장 많이 걸은 길은 천川이다. 

매일 반복하는 출퇴근은 삼천천을, 때때로 삶이 벅차거나 숨이 가플 땐 전주천을 걸었다.

우리 딸 : "누가 아빠에게 이해해 달라했어. 그냥 그렇구나 인정하고 믿어달라는 거지" 

독백 : "아니 부모가 조언도 못하나? 경험상 그 길보다 이 길이 더 나은 것 같아 하는 말인데 그것도 하지 말라니..." 

조직요구 : "우리 고객인 중소기업협동조합을 잘 모셔야 한다. 명품 서비스 제공, 그것이 중요하다"

독백 : "존재이유를 망각한 존재에게 그저 모시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 이 無心한 섬김이 우리 협동조합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존재이유를 심어주고 실천하도록 논쟁하고 교육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해되지 않은 것들로 혼란스러울 때 전주천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잔잔히 흐르는 개울은 속을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 송사리 살랑살랑 꼬리 흔들고 모난 돌멩이 여기저기 둥글게 앉아있다. 간밤 폭우에 개울은 성난 흙탕물이 되었다.

뾰족한 유리조각, 시커먼 폐타이어 주워 담고 주위를 휘졌고 지나간다. 그 난폭한 흐름에 풀꽃들 맥없이 뽑혀 자기를 잃는다. 맑게 살자. 너무 많이 담으려 하지 말자. 내 옆 풀꽃 내 안 조약돌 품으며 가자. 내 안의 말을 낮추고 풀과 돌들의 소리를 들어보자.”

벌써 몇 달째 긴장의 연속이다. 학술지 논문기고에 공개발표 준비에 한 달 가까이 서울집에 가지 못했다. 서툰 선택이 하지 않아도 될 고통을 안긴다. 어느 날부턴가 뒷짐 지는 게 힘들어졌다.

오른손은 노트북을 칠 때마다 전류가 흐르듯 절어온다. 짜증이 온몸에 퍼지던 어느 주말, 자리를 털고 삼천천을 무작정 걸었다. “팔, 다리, 목, 어깨 나에게 붙어있는 그것들이 애초처럼 자유자재라면 아직은 靑春이다.

肉身의 평범과 일상이 삐걱거릴 때, 정의와 열정과 개혁과 혁신이 내 안에서 사그라짐을 느낄 때 靑春이 떠나가는 신호인가 보다. 靑春을 붙잡듯 어깨를 감싸 주무르며 삼천천을 하염없이 걸었다. 인기척에 놀란 비둘기가 나는 듯 뛰는 듯 달아나다 나를 돌아보며 눈을 찡그린다.”

가을비 거칠게 내리다 금세 햇살에 말리는 요즘이다. 삼천천과 전주천에서 비와 햇살과 걸으며 내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지금이 幸福이다.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일더니 금세 쏟아지는 소낙비 길섶 샛노란 돼지감자꽃 속절없이 맞을 수밖에 갑작스런 방문에도 동요 없는 고요 나를 지키는 힘. 금세 방긋방긋 돌아온 햇살 활짝핀 노랑으로 반기는 돼지감자꽃 현명한 인연은 그의 변덕에도 나를 유지하는 것.”

이름 모를 들풀과 눈 마주치기, 해도 지쳐 사라진 어스름한 저녁녘 도시를 감싸 안은 산 뒤로 붉게 물든 노을 바라보기, 흐르는 물속에 발 담그고 불청객인냥 매섭게 노려보는 황새와 웃으며 눈싸움하기. 도심속 작은 개울이 제가 바다의 핏줄이요 맥박임을 알까 모를까 생각하기(*도종환의 개울 인용)

이런 시간들이 쌓이며 ‘낯섬과 주저’가 ‘친근과 살가움’이 되었고 ‘이기와 날섬’위에 ‘양보와 넉넉함’도 더하게 되었다.

완주군 슬치고개에서 발원해 한옥마을, 남부시장 등 구도심을 거쳐오는 전주천과 완주군  구이쪽에서 효천지구, 전북도청 등 신도심을 흘려오는 삼천천이 있어 전주가 참 좋다.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것들은 모두가 소중하다.

*삼천=전라북도 완주군과 전주시에 흐르는 하천. 삼천천이라고 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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