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꽃
고구마꽃
  • 전주일보
  • 승인 2021.10.1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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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고구마꽃무늬가 있는 어머니의 몸빼바지가
빨랫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몸빼바지가 동네 고샅길을 휘젓고 나갈 때면 
영락없이 어머니의 손에는 
이빨 빠진 호미가 들려있었다
어머니가 고구마 두렁을 긁어주면
땅속 고구마들은 여기도 가렵다고 저기도 가렵다고
저요 저요 난리가 아니다
어머니는 ‘그랴그랴  내 새끼들’ 하면서
등도 긁어주고 아랫도리도 긁어 주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의 몸빼바지 여기저기서 
고구마꽃이 피는 것이었다
7ㆍ8월 염천에도 고구마꽃은 꽃이었다

 

 

꽃은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말이 없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다. 추하면서 말이 많으면 싫어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꽃의 장점은 아름답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생명 순환의 법칙을 알려준다.

고구마꽃은 일반 꽃들과는 다르다. 뿌리로 번식하는 고구마는 평소에 꽃을 피우지 않다가 줄기가 약해지고 뿌리상태가 좋지 못하면 꽃을 피운다. 고구마 입장에서는 꽃필 때가 살기 힘들 때다.

가뭄이 심하거나 생명에 위협을 느낄 때 특이하게 꽃을 피우는 것이 고구마다. 나라에 가뭄이 들면 민심은 흉흉해진다. 그런 이유로 고구마꽃이 피면 나라가 망한다는 속설이 있다.

예전에는 고구마 꽃이 백년에 한 번 필 정도로 귀했다. 요즘 품종에서 가끔씩 고구마 꽃을 볼 수가 있다. 모든 식물들은 기름진 땅에서 잘 자라는데 반해 고구마는 박토를 좋아한다.

비옥한 땅에서 자란 고구마는 크지만 맛은 없다. 고구마는 밤맛이 난다고 밤고구마, 황토밭에서 자란 황토고구마, 속살이 호박색이라고 해서 호박고구마가 있다.

요즘은 건강에 좋다는 자색고구마가 나왔다. 가을철에 캔 고구마를 방 한쪽에 따뜻하게 보관하여 봄이 오면 씨고구마를 온상에 심어 싹이 올라오면 그 싹을 잘라 밭에 두렁을 만들어 심는다.

그것이 넝쿨로 자라 뿌리가 고구마가 된다. 겨울이 오면 길가에는 군고구마 장사가 등장한다. 고구마 구이 드럼통에서 구워진 군고구마를 사서 ‘호호’ 불며 먹는 맛은 기가 막히다.

신문지에 싼 뜨끈뜨끈한 군고마를 가슴에 안고 돌아가는 저녁은 행복 그 자체다. 골목 가로등은 나팔꽃을 닮은 마음 속 고구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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