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이병기 문학관 서둘러야
가람 이병기 문학관 서둘러야
  • 고재홍
  • 승인 2008.12.2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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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는 낡아지고 금잔디 새로워라. 덧없이 비와 바람 오고가고 하지마는. 한 줌의 향기로운 이 흙 헐리지를 않는다. 이화우(梨花雨) 부르다가 거문고 비껴두고. 등 아래 홀로 앉아 누구를 생각는지. 두 뺨에 젖은 눈물이 흐르는 듯하구나"(중략)

부안의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1573∼1610) 묘지에서 가람 이병기(李秉岐,1891∼1968) 선생이 지은 ‘매창뜸’이란 시다.

"쓰르라미 매운 울음이 다 흘러간 極樂山 위, 내 고향 하늘빛은 열무김치 서러운 맛. 지금도 등 뒤에 걸려 사윌 줄을 모르네"(중략)

金泉市를 사랑한 나머지 천(泉)을 파자(破字)해 호를 ‘白水’라고 정한 가람시조문학상 제1회 수상자인 정완영(1919~) 선생의 ‘고향생각’이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암 데나 정들면 못 살 리 없으련마는, 그래도 나의 고향이 아니 가장 그리운가"로 시작되는 ‘가람'의 작품과 비슷한 감흥을 일으킨다.


가람은 1891년 익산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전주공립보통학교와 한성사범학교를 거쳐 보통학교 훈도로 일하며 고문헌 수집, 시조연구 및 창작을 하며 청소년에 한글과 역사를 가르쳤다. 그후 조선어연구회 조직과 '시조회' 창립을 거쳐 시조 창작에 노력하고, 노산 이은상과 더불어 시조의 현대적 부활에 힘써 이희승은 "시조 하면 가람이 연상된다"고 평가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가람은 여산에서 해방을 맞았고 1946년에는 57년까지 서울대 문리과대학, 전북대 문리과대학, 서울대 대학원에서 강의를 한다. 1957년 뇌일혈로 고향에서 조리를 하는 한편 학술원 공로상, 문화포장을 받았다. 1968년 11월 생가에서 세상을 떠났다.
동서고금 해학과 기담으로 청중을 압도했고, 특히 자신을 '술복, 화초복, 제자복' 등 세 복을 지닌 사람이라며 '호산춘'으로 대표되는 술과 난초 가꾸기 등 풍류를 즐겼다. 역대시조선, 가람문선, 국문학전사 등 많은 저서를 남겼고 신재효 판소리를 발굴했다. 다가공원에 서거 1주기에 전주 상징인물로 가람 시비가 세웠졌으며 생가 '수우재'는 1973년 지방기념물로 지정됐다. '가람시조문학상'은 가람의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9년 제정됐다.

그러나 생가에는 본채와 사랑채, 정자에다 동상과 시비만 있을 뿐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시설은 없다. 최근 '가람 문학관' 건립 여론이 여산면을 중심으로 크게 일었다. 다른 지역이 문학관과 공원 등을 세워 자긍심 고취는 물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다, 올해는 가람 서거 40년째라 더욱 그렇다.

군산시는 소설 '탁류'로 유명한 백릉 채만식(1902~1950) 문학관을, 정읍시는 백제가요, '정읍사'를 근거로 예술회관 및 국악원, 공원 등을 세웠으며, '혼불'을 집필했던 최명희(1947~1998) 문학관이 전주한옥마을에 세워진데 이어, 남원시는 사매면 노봉마을 최명희 고향이자 소설 무대를 '혼불문학관'으로 개발했다. 광한루나 흥부마을도 사실 문학작품이 근간이다.

부안군도 매창이 묻혔던 '매창이뜸'을 '매창공원'으로 개발했고, 고창군은 미당 서정주(1915~2000) 문학관을 세웠으며, 심지어 생존한 조정래(1943~)씨는 고향이 아닌 작품에 따라 보성군에는 '태백산맥문학관'이, 김제시에는 '아리랑문학관'이 별도 건립됐다. 백수(白水) 정완영 선생을 기리는 '백수문학관'도 김천시에 세워져 이달 10일 개관식이 성황리에 개최됐다. 가람이 '매창뜸'이란 시를 남긴 이매창이나 가람시조문학상 최초 수상자는 물론 친일경력과 독재미화 논란이 있었던 '노산'과 '미당' 모두 문학관이 있는데 가람 선생만 없다. 올해 7월 발족된 가람기념사업회와 여산면주민자치위를 중심으로 문학관 건립 여론을 익산시에 전달했다.

그러나 익산시는 국비와 시비 45억원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 가람문학관을 세운다는 방침으로 2010년 국비확보 대상사업으로 분류했을 뿐 내년 예산은 전혀 배정되지 않했다.

시조의 이론적 체계화에 힘쓰고 수많은 작품을 남겨 '현대시조 태두'라 일컫는 '가람 문학관'이 없는 것은 '문화적 수치'다. 정치권과 지자체, 주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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