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 카페에서
산장 카페에서
  • 전주일보
  • 승인 2021.09.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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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 나/수필가
장 지 나/수필가

어제 늦은 밤까지 쓰르라미들의 합창이 한창일 때, 산에서 내려온 암수고양이들의 사랑을 보겠다고 친구와 나는 짓궂게도 숨을 죽이고 바라봤다. 그러나 동물적인 감각으로 숨어있는 우리들을 눈치챈 듯,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괴상한 울음만 울어댈 뿐 서로 바라보고 애만 태우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자연의 금지된 곳을 바라보지 않기로 하고 들어왔다.

도시를 약간 벗어난 왜 망실, 알프스 산자락처럼 풍광 좋고 공기 좋은 이곳에 친구가 집을 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즈넉하고 아늑한 분위기 있는 카페 밀 바를 운영 한다. 개성 있는 사장은 커피도 사이 폰 커피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좋아한다. 어젯밤 내린 가을비에 산천이 세수한 것처럼 청량하다. 앞산 자락에 걸쳐있는 낮은 구름은 금방 샤워한 듯 싱그러운 산이 부끄러워할까 봐 보일 듯 가릴 듯 오르락내리락하며 산허리에 맴돌고 있다.

 

숲이 내는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한 고요함 속에 모든 자연의 소리가 어우러져 어떤 오케스트라의 연주보다 더 싱그럽고 아름답게 들린다. 새벽을 여는 알람인 듯 들리는 새들의 노래, 뒷산에서 뻐꾹!’, 앞산에서 뻐꾹!’ 울리는 뻐꾸기 소리, 길 건너 마을에서 수탉이 홰를 치며 꼭 꼬끼오!‘ 울고, 멀리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조차 추임새로 들리는 아침이다. 밝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서 있는 카페 여자 YS도 조물주가 그려 넣은 자연의 한 자락 그림이다. 계곡의 아침은 이미 찬 이슬로 혼곤하고 깨어나는 모든 생명에는 자연의 은혜가 넘친다.

 

여름이 지친 9월 끝자락에 갈색 가을이 그리움을 타고 넘나든다. 욕심부리지 않아도 저절로 채워지는 계절이다. 어느 한구석에 미련같이 남아있던 여름이 마지막 안간힘처럼 심술을 부려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친구와 나는 지금 서로라는 작은 사회를 만들며 삶의 한 구비를 넘고 있다. 나는 모처럼 마스크도 쓰지 않고 이른 갈잎이 구르는 고즈넉한 오솔길을 걷는다. 얼마 만에 맛보는 자유로움인가. 지금 세상은 웃음을 감추고 표정을 숨기며 마스크 뒤에 숨어 눈만 뒤룩거리고 있으니.

 

이른 아침, 청설모 한 마리가 알밤을 물고 빼꼼히 내다보는 산자락을 천천히 산책하며 노천명 시인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라는 시를 읍 조려본다.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 초가지붕에 박 넝쿨 올리고/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놋 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 하겠소/

 

낯선 이에게도 기꺼이 마음을 열어주는 다정한 숨결이 있는 곳, 산장의 여인은 산그늘을 따라 걷고 새들의 날갯짓을 보다가 가만가만 동화를 읽어주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옆에 있는 나는 달콤한 사탕을 물고 있는 것처럼 행복해진다. 두 손으로 감싼 커피잔에서 진한 커피 향이 스멀스멀 그리움으로 변한다. 내 머리에 사리 하나씩 만들어준 배신한 인연들까지도 그리움과 포개진다.

 

약속되지 않은 타인과 만나는 카페 주인, 뜻하지 않은 많은 순간을 견디면서 배워나가는 것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라는 연결고리 아래 사람들과 소통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할 것 이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질문도 가능하다. 이런저런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차 한 잔 앞에 놓고 어쩔 땐 자기가 살아본 삶을 통해 인생 상담을 해 주기도 할 것이다. 그곳에 살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또 다른 삶이 있음을 엿본다.

 

코로나19의 심술 아래 짧은 봄이 지나갔고 곧 여름이 왔나 했더니, 벌써 가을이 물들고 있다. 가을인가 하면 금방 코끝 시린 겨울이 올 것이고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초조함에 읽던 책장을 넘기던 손을 힘주어 비빈다.

오늘처럼 산장 카페에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내 삶에 깜짝 이벤트 같은 일이다. 가슴에 몽글몽글 그리움이 스며든다.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들이 아직도 가을 우체통 앞에 서 있다.

 

너는 아직 거기 있는가? 가을이 물드는 이 한적한 길에 그리움이 흐르는 소리가 그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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