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됨에 값하는 ‘집과 밥’의 시적 정서”
“사람됨에 값하는 ‘집과 밥’의 시적 정서”
  • 전주일보
  • 승인 2021.08.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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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살이를 유학하는 자식이 왔다

환절기 감기몸살을 데리고 왔다

향수병이 동행했을 법했다

 

어미 치료제는 무쇠 솥에 안친 근심

한 솥

매운 고춧가루 입은 가을무우 생채

한 입

 

그리고

밑장 빼기로 갈무리해둔 꽃게탕

한 손

, 그뿐이었다

 

언제 향수병에 감기요 몸살이었냐며

식은 밥 먹고,

더운 공부한 자식의 한 마디

 

엄마

집의 의미는 밥이야!

 

-홍근숙(1965~ 부산)집은 밥이다전문

 

타지에서 공부하던 자식이 집에 왔다. 어미 왈 주말에 와도 외식도 못 시켜주고 우쩔까?”하니, 자식이 그런다. “엄마, 집의 의미는 밥이야!” 한다. 이 한마디가 한 편의 서정 드라마가 됐다. 더구나 집은 밥이다는 은유의 맥락을 채워 넣는 진술이 참신하다. 역시 좋은 시는 어깨의 힘을 빼고, 그저 생활[]이 차려놓은 사유의 식탁에 미감의 숟가락을 얹으면 되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억지로 꾸며서 만듦보다는, 주어진 체험을 변주하기만 해도 시는 제 길을 알아서 간다. 이 작품은 그런 과정을 보여준다.

진술에 동원된 시어들이 고급하다고 해서 고급한 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진술에 쓰인 언어들이 일상생활에서 건졌다고 해서 볼품없는 시가 되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시의 됨됨이는 그런 맥락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가능하다면 가장 쉽고 친근한 언어로 가장 고답한 정신세계의 깊이를 드러내는 시가 좋은 시인 것은 자명하다. 시의 됨됨이는 시가 풍기는 시적 정서에 대한 독자들의 공감에 달렸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우리 삶의 필수적인 핵심 요소들을 일상적 에피소드를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문학적 특징은 이 작품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사람살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를 들라면 그리 어렵지 않다. , , 가족으로 꾸려지는 가정, 그리고 구성원들의 공부는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이런 요소들이 건전하게 제 자리를 잡기 위해서, 이들 요소가 건강하게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아교질이 바로 사랑이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삶의 요소들은 한낱 구두선[口頭禪-실천이 따르지 않는 실속 없는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랑 없는 집은 건축물에 불과하고, 사랑 없는 밥은 한 끼 식사에 지나지 않으며, 사랑 없는 가족­가정은 모래 위의 집일뿐이며, 사랑 없는 공부는 그저 입신양명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집은 단순한 건축물만은 아니다. 사람에게 집은 하우스house가 아니라, home이어야 한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 <즐거운 나의 집>(원제:Home, Sweet Home. 작사:J.H.Payne. 작곡: H.R.Bishop)에는 집[가정]이 어떤 모습과 역할을 하는지 잘 담겨 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나의 집뿐이리.”

마찬가지로 밥 역시 한 끼 식사에 불과한 음식만이 아니다. 밥에는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필요 충분한 요소가 집약되어 있는 말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5,60년대만 해도 고샅길에서 동네 어른을 만나면 드리는 인사말이 진지 잡수셨어요?”였다. ‘보릿고개가 어느 지역에 있는 고개 이름이냐고 되묻은 신세대에게는 까마득한 옛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정서가 남아서 그런지, 요즘에도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하는 당부의 말씀이 대동소이하다. “밥 먹었느냐? 끼니는 챙겨 먹고 다니느냐?”

그래서 이 시에서 시적 정서를 집약적으로 그려내는 집은 밥이다는 은유는 매우 깊고 넓은 원관념을 담아낸다. 우선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다. 하나는 어머니가 주고자 하는 마음결이며, 다른 하나는 자식이 이를 받아들이는 마음결이 대응하고 조응하면서 함께 어우러져 사랑스러운 화음을 이룬다. 어미의 마음결은 “‘더운밥을 먹여 식은 밥먹고 공부하는 자식의 향수병을 치유하려는 것이며, 이에 반해 자식은 “‘식은 밥먹고도 더운 공부하고 있음을 보여주어 모성애에 응답하려는 것이다.

그런 두 마음결이 융합하여 엄마/ 집의 의미는 밥이야라는 화음을 낸다. 그래서 사람다움에 기여하는 집과 밥이 얼마나 소중하고 뜻깊은 것인가를 결구한다. 시의 어법이 아니고서 어떻게 사물의 가치와 의미를 이렇게 형상화 할 수 있을까, 시를 읽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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