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의 푸념
남은 자의 푸념
  • 전주일보
  • 승인 2021.08.2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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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광 섭/수필가
문광섭/수필가

건지산 둘레길 녹음 짙은 단풍나무 숲 나무 의자에 앉아 오랜만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명상(瞑想)에 잠겨본다. 여름 한 철이 다 가도록 이곳에 올 수 없었던 사연들이 머릿속에서 저마다 먼저 나오겠다고 아우성이다. 40여 일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건만, 몇 개월이라도 되는 듯 지겹도록 힘들고 버거운 나날이었다.

세계 기후 관측 사상 142년 만에 올 7월이 가장 무덥다고 했다. 40를 넘어서는 폭염 속에 미국, 캐나다, 그리스 등 유럽의 여러 나라와 남미, 아프리카에 산불이 발생해 지구를 더욱 달구고 있다는 뉴스가 잇따랐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재앙과 더불어 지구의 온난화는 인간이 자초한 일이라고 한다. 자연을 되돌려놓기 위한 인류 공동의 노력이 없으면 헤어날 방법이 없다니 두렵고 안타깝다.

지난 71일 백신 2차 접종을 마쳤다. 1차와 마찬가지로 속이 미식거리더니 이번엔 두통까지 곁들였다. 진통제를 먹고 잠을 청해봤으나 후텁지근한 날씨에다 컨디션까지 떨어져 힘들었다. 그래도 선풍기 덕분에 그런대로 버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입맛마저 딱 떨어지더니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사나흘 지나더니 몸살까지 도졌다. 병원엘 가야 하는지를 고민했으나 다행히 열이 없어 안도했다.

집안에 일주일가량 박혀 있자니 갑갑하던 차, 교우가 저녁을 같이하자 해서 나갔다. 그동안 입맛이 없어 출출하던 터에 과식까지 했다. 그리고 배탈이 났다. 방심하고 음식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다음 날부터 화장실에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하필 토요일 오후라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상비약으로 달래보려 했으나 듣질 않았다. 부득이 월요일에야 병원을 찾았더니 때가 늦어선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두 번이나 더 병원을 찾아야 했다.

병원에 들락거리는 사이, 요양병원에 있는 죽마고우 아들에게서 아버지가 폐렴이 도져 위급하다는 연락이 와서 친구의 얼굴을 보고 왔다. 칠월이 끝나갈 무렵에는 또 다른 친구가 운명했다는 부고를 받았다. 얼마 전 입원했단 소식을 들었으나 코로나 3단계로 문병조차 못 가고 기회만 보던 참인데 슬며시 떠났다요즘 친구들이 부쩍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지어 떠난다. 올 때도 그렇게 왔으니 갈 때도 그렇게 줄지어 가는 것 같다.

날마다 무더위로 달궈져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니 창문을 모두 열어 놓고 잠을 잤다. 나이가 드니 새벽녘엔 언제나 화장실을 다녀온다. 어렵사리 칠월을 보내고 팔월로 접어든 어느 날 새벽이다. 화장실 때문에 깬 게 아니고 갑자기 얼굴에 스치는 서늘한 바람에 눈을 떴다. 서늘바람이었다. 아니 무슨 일이야 하고 벌떡 일어나 달력에게 물어봤다. 내일이 입추(立秋)란다. ! 잠깐 사이에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데‧‧‧‧‧‧.

요양병원에 있는 친구 둘째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를 위하여 기도 좀 해주세요!” 하는데 갑자기 목이 메었다. 위급해서 그러나 싶었다. 알았다고 대답했으나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애가 탔다. 코로나 시국이라 신부님이나 수녀님 모시는 일도 쉽지 않아서다. 순간, 미사를 봉헌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서둘러 토요일 오전에 송천 성당에서 이 요셉의 빠른 회복을 위한 미사를 드리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지난 9() 아침이다. 복지관 종강 수업에 가려고 대문을 나서는데 손전화기 벨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역시 죽마고우 아들이었다아버지께서 새벽에 운명하셨어요. 지금 군산으로 가고 있어요.”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실오라기 같은 기대를 걸었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잠시 눈을 감고서 이제 편히 쉬라고 그의 명복(冥福)을 빌었다. 그를 보내고 나만 남았다.

의자에 앉아 많은 생각이 오갔다. 누구나 나이 들면 병들기 마련이고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게 세상의 순리요 자구가 도는 이유다. 갑자기 숲속에서 비둘기 한 쌍이 솟구쳐 오르며 나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우두거니 앉아 돌아갈 줄 모르는 내가 딱해 보였던 모양이다. 눈을 들어 보니 해가 서산을 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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