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공존하는 승암산(치명자산)
다름이 공존하는 승암산(치명자산)
  • 전주일보
  • 승인 2021.08.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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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승 찬 /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박승찬/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한옥마을 지나다보면 급하게 치솟아 마을을 굽어보는 산이 보인다. 십자가와 절 그리고 무당 깃발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곳이다. 스치며 지날 때 마다 묘한 호기심이 동하여 주말 걷기장소로 정했다.

국립무형유산원 건너편 승암교를 지나면 정면으로 승암사, 좌로 시나브로 길, 우로 바람 쐬러 가는 길이다. 오늘은 치명자산 성지를 거쳐 정상에 오른 후 반대편으로 동고사와 동고산성  까지 걷기로 마음먹었다.

아쉽지만 시나브로 길을 뒤한 한 채 바람 쐬러가는 길을 따라 치명자산 성지로 직진했다.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땐 삶은 곡선보다 직선이다. 직선의 길에서는 여유와 낭만보다 목표완수라는 성취감만 맛보아야 한다.

치명자산 성지는 신유박해(1801년)때 순교한 호남의 첫 천주교 사도 유항검과 그의 아내, 자녀, 며느리 등 가족 7인 모신 곳이다. 가톨릭에서 순교자를 이르는 옛말, 치명자(致命者)를 붙여 치명자산으로 불리게 됐단다.

본디 이름 승암산을 놔두고 왜 치명자산인지 알겠다. 그러나 이름에 집착하는 것은 권력투쟁과 동일맥락으로 볼 수 있는데 사랑, 치유의 땅에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이 들었다. 존재를 밀어내지 않고 스며들었으면 그래서 ‘승암산 순교자 성지’ 혹은 ‘승암산 순교자 묘역’ 정도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앉고 슬퍼하는 피에타상에서부터 십자가의 길은 시작되었다. 한사람만 걸을 수 있는 돌길은 6~70도의 가파름까지 더해 일체의 잡념을 사라지게 했다. 오르다오르다 한숨 쉬어야겠다 생각이 들때면 여지없이 방향이 바뀌는 지점으로 어린양을 옆에 두고 십자가가 서있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사형선고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기신후 무덤에 묻히기까지 주요 사건마다 굽이 굽이 총14개였다. 마지막 제14처(예수님 무덤에 묻히심) 부터는 좌우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곧 사랑임을 꽃말이 '진실한 사랑'인 동백을 통해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십자가 길을 지나니 얼마 가지않아 산상 성당이 나왔다. 바위산에 위로 가지않고 묵직하게  앉아 있어 무거운 침묵으로만 기도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 신부님이 내부집기를 햇볕에  말리고 건물 외벽의 이끼를 닦느라 여념이 없다. 행여나 인기척이 방해될까 까치발을 하고 지나갔다.

승암산 정상 전망대는 전주시내를 한 눈에 선사했다. 가까이 한벽루에서 전동성당, 오목대, 경기전을 지나 전주시청, 전북도청까지 푸른 하늘아래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부처님, 성모님, 신령님께 전북의 발전과 도민의 평안을 기원해 본다.

며칠 전 읽었던 책(부처-조성택 등 著)이 효험이 있었나 보다. 내가 타자를 위해 빌다니...  “나는 나 아닌 모든 것에 의존하고 그 모든 것과의 관계를 통해 나는 온전히 존재 할 수 있다”

정상을 지나 반대편으로 내려가니 이 곳은 부처님 세상이다. 편백과 대나무 그리고 가파른  산세에 동고사가 위태롭게 앉았다. “코로나로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문구에 동고사를 자세히 보지 못했다. 동고사 옆 산머리에 3미터 정도의 부처님 전신상이 서있다.

길섶에서 올려다 본 부처님은 검정머리에 하얀 옷 걸치고 붉은 입술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색했다. 그래서 더 신령스러웠다. 신령스런 부처님께 가족의 안녕을 위해 합장해 본다.

여름 찌는 더위에도 승암산은 서늘하다. 신령스런 기운들이 서려 더 그런 느낌이 드나보다. 스산하고 서늘한 느낌을 안고 동고산성으로 향했다. 동고산성은 후백제를 세웠던 견훤의 왕궁터가 있는 곳이란다.

산성 초입엔 수도암, 천지암,  보현암 등 암자와 신당들이 많았다. 佛敎의 나라 고려를 지나 儒者의 나라, 조선이 들어서고 승려와 무당은 이단과 음사로 규정되어 도성 밖으로 추방되었으니 이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

전라감영을 중심으로 당시 가장 핫한 곳을 지척에 두고 묵직하게 마을을 굽어볼 수 있는 이곳이 그들이 갈 수 있는 최적지가 아니었을까 근거없는 추정을 해본다. 동고산성을 걷는내내 하얀나비가 옆에서 동행을 해준다. 견훤의 환생인가, 산성을 지키는 이름없는 초병인가?

산성을 내려오는데 수녀님 두분이 동고사 길을 따라 치명자산 성지로 도란도란 향하고 있다. 산사와 수녀님, 보기에 평화롭다. 성당에서 묵상하고 사찰에서 기도하며 신당에서 소원빌어 충만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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