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무시한 교통행정에 대한 단상(斷想)
현실 무시한 교통행정에 대한 단상(斷想)
  • 신영배
  • 승인 2021.08.1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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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
신영배 대표

처서가 다가오니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 제법 시원하다. 더위도 가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올해 여름은 유독 더웠다. 짧은 장마와 높은 기온과 습도,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불투명한 나날이 삶의 체감온도를 더욱 높였다.

오늘은 자동차 운전자들이 일상에서 체감하고 있는 마구잡이 교통행정, ‘안전속도 5030’이라는 정책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이 정책이 교통사고를 줄이고 특히 생명을 잃는 일이나 중상자가 줄어드는 효과를 보였다고 경찰과 관련부서는 자랑한다.

하지만 운전자들의 불편과 정책의 불합리에 대해서는 안중에 없다. 솔직히 최근 들어 자동차를 운전하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수시로 속도계를 확인하거나 혹시 스쿨존과 단속카메라가 있지 않나 마음을 졸여야 한다. 네비게이션에 의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제한속도를 초과해 어김없이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든다.

정부는 지난 417일 이른바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시행했다.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를 제외한 도심 일반도로의 제한속도가 기존 시속 60에서 50로 줄었다. 어린이보호구역이나 주택가 뒷길은 시속 30이하다. 어기면 최대 14만원의 과태료와 위반 속도에 따라 최대 100만원의 벌금과 벌점 100점이 부과된다. 한 번 실수에 운전면허가 정지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단속카메라 앞에서만 속도를 줄이는 이른바 캥거루 운전이 대세다. 이 때문에 뒤따르던 자동차와 추돌하는 교통사고도 빈번하다. 그러자 당국은 무인 단속카메라와 암행 단속반을 가동했다. 정부가 운전자의 운전편의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자동차 속도를 낮추는 이유는 당연히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특히 어린이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고 보행자 안전을 위한 이 제도는 필수적이다.

실제로 안전속도 정책이 시행된 후 지난달 26일까지 집계한 도심에서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25일 시행된 민식이법도 교통사고 줄이기에 한몫했다. 민식이법은 2019911일 충청남도 아산의 어린이 보호구역 건널목에서 교통사고로 숨을 거둔 김민식 어린이의 이름을 따서 붙인 법률이다.

자동차 속도줄이기 정책과 관련, 시행 초기에는 대한민국 운전자 모두가 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운전자 수가 많아지고 있다. 현장의 교통상황을 무시한 채, 도로 인근에 초등학교나 어린이 시설이 있다면 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무조건 30이하로 속도를 낮춰야 하는 스쿨존을 적용하고 있는 탁상행정이 문제다.

교통 전문가들은 자동차의 제한속도를 낮추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교통체증을 완화할 인프라 확충이나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일부 왕복 4차로 이상인 대로(大路)의 제한속도가 시속 30로 설정되는 등 불합리한 교통환경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23번 국도 일부 구간(부안 행안~고창 흥덕)의 경우 불과 25의 짧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10여 대의 단속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특히 상서면 우덕초등학교 인근 스쿨 존(어린이보호구역)을 통과할 때, 자칫하면 일반도로 대비 2-3배의 과태료 및 범칙금 통지서가 날아올 수 있다. 이 때문에 10분이면 달릴 수 있는 거리에 무려 30여분이 소요된다. 필자는 매일 이 구간을 운전하며 스트레스가 쌓여 최근 흰머리가 더 늘었다.

물론 관계기관에서는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위험지역에 단속카메라와 스쿨존, 신호등 등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교통사고를 예방하거나 줄이기 위해서는 운전자들이 어떤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보행자의 생명을 보호해야 함은 반대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현장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교통 제한을 시행해 불편과 불합리를 만들어내는 탁상행정은 시정해야 한다예를 들자면 도심을 통과하는 도시계획도로와 지방도의 교통환경은 크게 다르다. 그런데도 전국의 모든 도로에 똑같은 도로교통법을 적용하는 일은 합리적인 행정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국도 23호선을 통과하는 우덕초등학교와 영전초등학교, 줄포중학교 인근에 각각 설치된 스쿨존과 신호등, 단속카메라는 대표적인 탁상행정으로 규정 할 수 있다취재 결과 이 지역 학생들은 등하교에 학교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스쿨존으로 설정된 지역을 이용하는 어린이가 1-2명에 불과한데도 운전자들은 24시간 동안 시속 30이내로 속도를 줄여 운행을 해야 한다. "차라리 소달구지를 타고 다니는 것이 현명하다"는 운전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필자 또한 도심을 비롯해 국도, 지방도의 경우 제한속도를 낮추는 것이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효율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운전자들의 편의가 고려된 도로 인프라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정책 또한 동시에 시행돼야 한다는 주장은 당연하다.

자동차 속도를 낮출수록 교통사고 발생이 줄어드는 건 맞다. 그렇다고 무조건 속도를 줄이는 건 교통의 흐름을 더디게 하고 운전자의 피로도 증가와 함께 에너지 소비만 늘려 지구를 병들게 한다. 그래서 단속과 적발에 매달리기보다는 도로의 교통환경을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하차도를 개설하거나 우회하는 등 노선을 개량하고 학교의 진입도로를 변경하는 등의 노력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다. 불합리한 탁상행정으로 막대한 과태료와 벌금을 거둬들였으면 당연히 교통환경 개선에 그 비용을 써야 한다.

아울러 교통 범칙금이나 과태료도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적 현실을 반영해서 차등을 두어야 한다. 수도권에만 몰려드는 인구집중을 막는 한 방법으로 범칙금과 과태료도 2~3배 차등을 두면 일석삼조(一石三鳥)쯤의 효과를 내지 않을까 싶다.

정리하자면, 마을(40이하)과 초등학교 인근에 무조건 스쿨존(30이하)과 단속카메라를 적용하는 탁상행정을 지양하여 현장의 도로 사정을 먼저 살펴 적절한 제한조치를 적용하게 하고 교차로 지하화와 우회도로 시설 등 교통 인프라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수도권과 중소도시, 시골을 구분해 지역에 따른 법 적용 기준과 벌금과 과태료 액수를 달리 적용하는 연구가 시급하다. 그래야 지방자치제도의 근본 취지에도 부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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