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새롭고 의미 있어 아름다운 사람의 꽃”
“시, 새롭고 의미 있어 아름다운 사람의 꽃”
  • 전주일보
  • 승인 2021.07.12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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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롭고 의미 있어 아름다운 사람의 꽃

 

말 많은 동네 아줌마들이

면사무소 담벼락에 옹기종기 모여 서서

끝도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한시도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스피커처럼 층층이 매달아 놓고

동네방네 떠들어대다가

더러 배꼽 쥐고 자지러지게 웃어대며

벌 나비가 기어 들어가 한참을 놀고 나와도

꿀물 같은 얘기들 그칠 줄 모르더니

끝내는

모두들 제 설움에 겨워

울컥울컥 피 묻은 울음을 뱉어내고 있다.

 

-이상인(1961~ 전남 담양)접시꽃전문

 

  접시꽃은 어떤 꽃인가? 누구는 접시꽃이라면, 같은 제목으로 된 다른 이의 시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 유명세로 인하여 그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나팔꽃이 어찌 그렇게 한 곳에서 한 모습으로만 피겠는가. 나라면 그 옛날 장독대 부근이나 울타리 가상에 피어나던, 아련한 그리움을 떠올리기에 접시꽃만한 꽃도 없다고 여긴다. 그런 옛날 정서를 불러일으키면서 이상인 시인의 시가 나를 유년시절로 보내주었다.

  나는 그렇다 그 소박하지만 멀뚱한 키에 어울리지 않게 손나발을 불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동네 친척뻘 되는 형을 생각하곤 한다. 그 형은 아저씨(형의 아버지)4녀독남-외아들이었는데, 키는 멀뚱하게 크면서 하는 행동이 어쩌면 싱겁고, 어쩌면 엉뚱한 발상으로,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이었다.

  이를테면 아저씨가 그렇게도 바라는 공부 열심히 해서 입신출세 부모현양 立身出世 父母顯揚과는 거리가 먼 일들만 골라가면서 했다. 외아들이라고 귀하게 여겨서 금이야 옥이야 보살피는데도 형은 그런 부모의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저씨가 그렇게 극성을 부리는 일만 골라 했다. 이를테면 노래자랑 대회가 있다 하면 원근을 불문코 반드시 참여해서 부상으로 냄비나 세숫비누 등속을 타오기도 했다.

형은 자신이 부모의 귀한 외아들이라는 사실을 십분 활용하는 듯했다. 당시로는 귀한 유성기를 사달라고 몇 날 며칠이고 떼를 써서 기어코 유성기를 받아내고야 마는 식이다. 덕분에 나는 형을 졸졸 따라다니며 그 귀하고 신기한 유성기 음악을 실컷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래서 접시꽃을 떠올리거나, 그 꽃을 목격하게 되면 내 기억의 걸음은 어김없이 옛날 그 유성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팔꽃이 무슨 스피커라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그 유성기가 내 유년 시절을 불러내는 스피커 노릇을 충실히 해 주었다.

‘  열렬한 사랑, 다산, 풍요가 접시꽃의 꽃말이다. 꽃말과는 상관없이 나팔꽃이 보여주는 소박미와 멀뚱하게 큰 키로 세상을 조망하는 모습, 세상사에 관심이 있는 듯이 우쭐대기도 하고, 아니면 조석변하는 속세에 관심조차 없는 듯 하늘거리는, 달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접시꽃은 잘 다듬어진 도시의 대공원에는 어울리지 않는 꽃이다. 면사무소 담벼락이 바라다 보이는, 시골의 조촐한 공간이면 그만이다.

  접시꽃은 말 많은 동네 아줌마들이 동네 고샅에 모여 입방아를 찧듯이, 꽃이 어긋나게 피면서 꽃대를 올린다. 그 꽃이 입심 좋은 아줌마의 말발을 닮았대서 나쁠 것이 없다. ‘벌 나비가 들어가 한참을 놀고 나와도그 말발 좋은 접시꽃 스피커에서는 꿀물 같은 얘기들이 그칠 줄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야기가 끝내는 제 설움에 겨워/ 울컥울컥 피 묻은 울음을 뱉어내고있을지라도, 접시꽃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네 삶을 달관의 모습으로 지켜봐 주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까, 없을 것이다. 이제는 너무 멀리, 너무 아득한 세월을 건너오고야 말았다.

  이 시의 무엇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따로 있을 법하다. 단순히 계절 따라 피는 접시꽃을 그렸대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체 무엇이 우리를 감동시켜 접시꽃 아닌 접시꽃을 피우게 하는 것일까? 다름 아닌 새로운 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합목적의 표상인]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서 피우는 꽃이 시 말고 또 어디에 무엇이 있을까? 면사무소 담벼락에 매달려 동네방네 기쁜소식-궂긴소식가리지 않고 나팔을 불어대는 스피커를 닮은 꽃,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담아내는 꽃, 꿀물을 담고 있기도, 피울음을 담고 있어 사람 닮은 꽃, 이런 꽃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시 말고는 도무지 이런 꽃을 피울 수도, 그려낼 수도 있는 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게 추억에 목마른 사람을 위해서 한 편의 시는 서정의 꽃대를 올려 두었다. 접시꽃이 내 메마른 감성의 울음관을 울리기도 하고, 아련한 옛 노래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런 꽃이면 그만 아니겠는가? 무엇인가 열렬히 사랑할 대상조차 흐릿해지는 시절, 다산이나 풍요마저 그 말뜻을 잃어버린 시대일수록 한 편의 시가 잃어버린 소중한 사랑과 풍요로운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그래서 그렇다. 시는 깊은 사유와 미학적 표현이 낳은 사람의 꽃이다. 그런 꽃만이 진실의 편에 다가설 수 있을 따름이다. 시의 접시꽃이 참 좋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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