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조절 장애를 극복하자
분노조절 장애를 극복하자
  • 전주일보
  • 승인 2021.07.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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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김규원 편집고문

비가 그치는가 하면 다시 내리고 내리는가 하면 그친다. 장마가 이어지면서 끈적거리고 불쾌한 감정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뭔가 만만한 물건이 있으면 시원하게 때려서 부숴버리고 싶은 그런 기분이 일어나기도 한다.

코로나19가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하루 1,300명을 넘어섰다. 주말인데도 이런 수치를 보인다면 이번 주에 더 느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특히 수도권에서 1천명대를 넘나들고 있으니 장마가 그치면 본격적으로 시작될 휴가철에 전국으로 번지는 대확산이 있을 거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 바란다.

장마에 코로나19, 그리고 혼란스러운 이념 몰이와 마녀사냥, 대선을 앞둔 입지자들의 움직임 등 모든 것이 눈에 거슬리고 답답하다. 아예 눈을 감아서 안 보고 안 듣고 살면 좋으련만, 하는 일이 세상사를 들여다보고 뒤집고 엎어 살피는 일이니 그럴 수도 없다.

요즘 사건 사고를 들여다보면 아무 이유 없이 타인을 폭행하거나 심지어 죽이는 일이 빈번하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무엇을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 분노조절 장애라는 증상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의학 용어로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라고 한다. 충동조절 장애의 하나로 분류된 장애로 폭력이나 파괴를 유발하는 공격적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정신장애라고 한다. 정신질환 진단 통계에 등록된 정신질환이다.

하찮은 일에도 발작하듯 폭발적인 공격성이 드러나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선 행동을 한다. 이런 증세가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 지속되다가 갑자기 정상으로 돌아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거나 부인하기도 한다.

이 증상이 발현하면 통제할 수 없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 전혀 문제일 수 없는 일에 극렬하게 분노하여 공격성을 쏟아낸다. 이런 증상이 나타날 때 본인은 물론 타인의 설득에 통제되지 않는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폭력성 공격을 퍼부으며 증상이 가라앉을 때까지 이어진다.

-분노조절 장애 질환자 양산 

요즘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 분노조절 장애라는 정신병이 만연한 듯 보인다. 다만, 그 증상이 심한 사람과 덜한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방송과 유튜브, SNS 각종 언론매체 등을 통해 쉼 없이 몰려오는 정보를 소화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부추기는 매체와 가짜 뉴스 생산자들이 배출하는 쓰레기 정보를 감당하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특히 사회 혼란을 노리는 거대 언론매체들이 가공해내는 정보에는 읽으면 저절로 세뇌되고 분노조절 장애를 유발하는 독소가 숨어 있다. 혼란과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여 그 속에서 이익을 취하고 끼리끼리 잘 먹고 잘사는 사회를 만들려는 발톱을 감춘 그들의 교묘한 수법에 걸려들면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분노 조절 장애 질환자로 변해 간다.

이런 질환자에 가까운 사람들이 느는 데에 타이밍을 맞추어 그들의 분노 심리를 이용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소득이 늘어 생활이 윤택해지고 세상을 더 넓게 알아가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격차를 실감하게 되고 그에 따른 상실감이나 패배감에 속이 들끓는 이들이 늘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만의 요인을 정부나 사회에 돌리게 하는 일부 악성 언론기업과 묵은 시대에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집단이 그들을 선동한다.

오로지 정권의 취약 부분만을 부풀려 침소봉대하면서 권력을 되찾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거기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코로나블루라는 우울증이 가세했다. 엊그제 박수치던 손들이 오늘은 손찌검하는 손으로 변했다.

정권은 촛불의 갈망을 까마아득히 잊고 자화자찬에 빠져 번져가는 분노를 감지하지 못했다. 그것이 질환처럼 번진다는 사실은 물론 더욱 몰랐다. 냄비처럼 금세 뜨겁다가 식는 사랑을 검은머리 파 뿌리 되도록이어지는 것으로 헛짚었다.

-분노 속에서 피어나는 변화의 열망

국민의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울리는 사회로 변한 지난 4, 그 소리의 공명을 왜곡하려는 집단의 획책은 집요했다. 그 큰 소리가 자신들을 지지하는 소리라고 선전하고 믿으며 촛불 이전에 세상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변화를 가장하여 꿈틀거린다.

그 움직임 가운데 젊은 보수 야당 대표 이준석을 읽을 수 있다. 대결과 경쟁이 공정하게 치러지는 것이 공정사회라고 주장하는 엘리트주의가 일부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으며 신선한 날것인 양 설치고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경쟁을 공정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

부모를 잘 두어 학원을 섭렵한 덕분에 일류 대학을 나와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런 사고방식이 오늘의 계층사회를 만들었다. 돈 많은 자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군림하는 사회를 공정사회라고 생각하는 위험한 편견이 젊음을 앞세워 국민의 지지를 받는 오늘의 현상은 분노 조절 장애의 표출이고 달라져야 한다는 절박한 심경이 보여주는 증표라고 해석할 수 있다.

변화가 다급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준석의 경쟁공정이 용납되는 사회로 변해서는 안 된다.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 세상을 이끄는 사회, 다시 말하면 돈 많은 사람이, 금수저가 세상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 그들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을지라도 그 사실을 공론화하여 기정사실로 고착할 수는 없다.

갈라치지 않고 서로 보듬으며 함께 가는 사회, 너 죽고 나 사는 지난 시대의 경쟁을 넘어 쓰러진 이를 일으켜 세워 함께 걷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반공 이념을 앞세우듯 국민을 억압하고 짓누르던 시대로 회귀하려는 시도는 결연히 배척해야 한다.

촛불을 들어 나라다운 나라를 염원했던 그 마음, 가슴 한구석에 아직 살아있는 양심과 사랑의 정신을 깨워 이 세상의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 자칫 허망한 논리에 빠져들어 이 시대를 잘못 건너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시 뒤로 돌아가 어두운 시대로 가려는 시도는 확실히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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