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지 바꿔 생각해봐
처지 바꿔 생각해봐
  • 전주일보
  • 승인 2021.06.17 15: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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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김 영 숙/수필가
김 영 숙/수필가

다문화 고부 열전.”이라는 TV 프로그램 몇 편을 쉬는 날 몰아서 봤다. 다문화 가정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를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인데 일방적으로 누구의 잘못으로 몰아가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다. 또한, 다문화 가정이라고 특별하게 그려낸 내용도 별로 없고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가족 문제라는 시각에서 차분히 갈등을 풀어가는 전개의 매력이 있어 틈나는 대로 몇 편씩 보는 중이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내 처지도 조금은 대변하는 것 같아 공감 가는 부분도 꽤 있다.

고부 갈등은 어디에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문화 가정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여느 가정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긴 하다.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국적, 서로 다른 문화라는 큰 벽이 그것이다. 며느리들은 말도, 음식도 사람도 낯선 한국에서의 시집살이는 만만하지 않다. 가족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지만, 시어머니는 대체 왜 나를 못 마땅해하실까? 대체로 며느리의 생각이 그렇다. 그런 며느리에게 살림도 맡기고 손자도 키우고 알콩달콩 잘 지내보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구석은 없구나 싶은 것이 또 시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함께 있으면 어색하고 답답함이 갈등을 몰고 온다.

오늘 내가 시청한 방송은 베트남에서 시집와서 축산업을 하는 남편과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직장생활까지 하는 결혼 5년 차 부부의 사연이었다. 5년이나 한국살이를 했으니 말도 꽤 익숙해졌고 일도 억척스럽게 하는 전형적인 농촌 아낙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며느리는 두 아들과 집안 살림은 시어머니한테 맡기고 오직 직장생활과 농사일만 한다. 시어머니는 죽으면 싸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맨날 돈밖에 모른다며 며느리에 불만이 쌓이고 며느리는 열심히 사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어머니는 나만 보면 짜증만 내신다며 속상해하면서도 언어의 장벽에 막혀 오해만 쌓인다. 결국에 오해는 갈등으로 이어지고 그 갈등이 쌓여 폭발 직전에 이르러서야 두 사람이 택한 것은 여행이다. 고부(姑婦)가 역지사지의 힐링 여행 즉, 시어머니는 며느리 나라에 가서 며느리가 살아온 환경을 통해 갈등을 풀어가기 위함이다.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도착한 베트남 공항에서 다시 자동차로 6시간을 비포장도로를 달려 겨우 도착한 며느리의 친정, 시어머니는 그들이 사는 형편을 직접 눈으로 보고서야 사돈네에 냉장고를 통 크게 선물하며 친정에 자주 못 보내준 미안함이 앞선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한편으로 며느리가 친정에 단 몇 푼이라도 살림살이에 보탬을 주고자 몸이 부서지라 억척스럽게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앞으로 힘이 닿는 데까지 집안 살림을 돕겠노라며 며느리를 다독이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참 푸근했다.

방송 프로그램이 한 사람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를 모두 깨끗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비록 며느리의 친정 나들이를 계기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화해를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그 이후에 이어질 삶은 다시 그들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 해소하지 못한 오해의 앙금은 언제든지 다시 갈등을 부추길 수 있고서로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화해의 완결은 갈등의 끝이 아니라 현재 시점의 또 다른 시작이다.

비단 고부 열전이 다문화 가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나 역시 시어머니의 며느리이자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다. 답답하고 이해하기 힘든 일 왜 없을까? 그때마다 형편 바꿔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고자 노력 중이다. 며느리 처지에서 이해 못 했던 일도 시어머니 위치가 되어보니 쉽게 이해되는 일도 많다. 한 사람이 살아온 문화를 알면 그 사람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지는 법,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건 사는 내내 숙제가 될 것 같다. 물론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쉽게 풀어지는 게 또 고부 관계 아닐까? 핑계'라는 대중가요 중에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처지 바꿔 생각을 해봐.” 이런 가사가 있다. 그렇다. 처지 바꿔 생각하는 것, 즉 역지사지의 정신은 어떤 경우에서 사용하든 간에 최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완벽한 정답은 없을 듯, 있다면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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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2021-06-18 16:15:42
고부 열전.... 요즘은 대세가 역전되어 시어머니가 어느리 눈치 본다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