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시인일 수 없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시인일 수 없다.”
  • 전주일보
  • 승인 2021.05.3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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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시인일 수 없다.”

 

원고료도 주지 않는 잡지에 시를 주면서

정신이 밥 먹여주는 세상을 꿈꾸면서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숟가락으로 제 생을 파먹으면서

발 빠른 세상에서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면서

냉정한 시에게 순정을 바치면서 운명을 걸면서

아무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면서

새 소리를 듣다가도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고 책상을 치면서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시적인 삶에 대해 쓰고 있는 동안

어느 시인처럼 나도 무지하게 땀이 났다

*연암 박지원의 글에서

-천양희(1942~ 부산)「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전문

 

이 작품에는 시에 관한 몇 가지 대답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 작품은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하는 형식이라는데, 이 시에는 질문보다는 오히려 해답이 담겨 있는 것으로 읽힌다.

먼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바로 정신이다. 시는 곧 정신이란다. 정신이 사람에게 밥을 먹여준다는 것이다. 밥이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생명체가 하나뿐인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못 할 짓이 없게 하는 것, 그렇게 밥을 챙기기 위해 사투를 벌일수록 찬양받게 하는 것이 곧 밥이다. 그래서 사흘 굶어 담 넘지 않는 사람없게 하고, ‘목구멍 포도청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사람 없게 한다. 그런데 시인은 그 밥을 바로 정신에서 구한다는 것이다. 정신이 밥을 먹여줘도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시라는 것이란다.

다음으로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은 바로 빛나는 것이다. 세상에는 빛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이아몬드나 보석류들은 지나치게 눈부시니 그렇지만, 무사의 가슴에서 번쩍이는 훈장이나, 사람들로 하여금 사다리에 오르도록 채근하는 계급장이나 벼슬자리들은 얼마나 뿌듯하게 빛나고 있던가.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값보다 비싸면 비쌌지 결코 헐하지 않은 값비싼 외제 차들의 광택은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한다. 그런데 시는 이런 것들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별과 시만이 빛나는 것이란다.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란다.

시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또 있다,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는 것이란다. 우리나라 학교마다 내걸고 있는 교훈 중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것을 고르라면 아마 근면성실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 겨레는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여긴다. 더구나 빨리빨리는 해외에 알려진 ‘K브랜드의 대표적인 한국말이다. 브리태니커 사전에도 이 말이 등재되었다는 해외 토픽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는 그런 미덕과는 역행하는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는 것이라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하긴 눈 감으면 코도 베어가는 세상은 조선 시대에나 있을 법한 속도감이다. 지금은 눈 감고 있으면 세상이 몇 번이나 바뀌는 21세기 AI[인공지능]IT[정보기술]시대가 아닌가. 이런 때일수록 시가 아니고서 그 무엇이 게으름과 느림으로 사람다움을 누려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시에 대한 대답 중에 이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는 것그것이 시란다. 하긴 어느 철학자는 요즈음 세상에 누가 성인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대답을 내놓고 있다. 그만큼 말 풍년 시대다.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말을 남발하는 시대다. 그런 말들이 과연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일까? 모르면 몰라도 아마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들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 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곧 시란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해답을 듣다 보니, 시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 저절로 떠오른다.

시인은 정신이 밥을 먹여주는 자이기 때문에, ‘사흘 굶어도 남의 집 담장을 넘지 않는 사람이다. 정신으로 이미 배가 부른 사람이 굳이 월담이라는 험한 작업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의하면 그런 사람만이 시인일 수 있겠다. 또 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며 반짝이는 것은 하늘의 별과 시인의 가슴에서 반짝이는 시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만이 시인이란다. 그러고 보면 시인의 삶은 훈장이나, 벼슬이나, 황금처럼 사람들을 유혹하는 빛들과는 멀리 사는 사람이겠다.

남의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려면 시인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려면 시인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들을 실천궁행하며[實踐躬行-실제로 몸소 행함]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자만이 시인일 수 있겠다.

이런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연암燕巖 선생처럼 새 소리를 듣다가도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라고 책상을 치면서좋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새소리는커녕 지구가 중병이 들어 앓는 소리에도 나 몰라라 하면서, 어느 세월에 책을 읽을 것인가! 그래서 그렇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시인이 될 수는 없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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