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본래 가치를 지키는 일
땅의 본래 가치를 지키는 일
  • 전주일보
  • 승인 2021.05.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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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화 / 한국농어촌공사 전주완주임실지사장
이 종 화 / 한국농어촌공사 전주완주임실지사장

오늘날 단체라는 뜻으로 쓰이는 한자 ‘사(社)’는 본래 ‘토지의 신’이라는 의미가 있다. 示가 제사를 나타내고, 土가 토지를 가리키는데, 이 둘이 합쳐진 ‘社’는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다.

농경이 기본인 고대사회에서는 토지의 좋고 나쁨을 중시해서 매년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의 사직단(社稷壇) 또한 이 토지의 신과 관련이 깊다. 사직단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경복궁을 세우면서 종묘와 함께 조성한 신단으로, 사(社)는 토지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의미한다.

조선의 임금은 가뭄이 심할 때를 비롯하여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사직단에 나가 농사의 길흉을 좌우하는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정성껏 제사를 드렸다. 이처럼 옛날부터 사람들은 토지를 중요시하고 존중해 왔다.

그러나 오늘 날의 토지는 막대한 개발 차익을 거둘 수 있는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는 토지로 수익 내는 법, 농지 투기하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땅이야 말로 부자가 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선동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투기와 맞물려 농지 투기가 국민적 관심사가 된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면 토지의 신이 노할 노릇이다. 최근 일련의 부동산 사태로 촉발된 농지 투기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토지, 특히 고대사회로부터 이어져 온 농지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농지란 말 그대로 농사를 짓는 땅이다. 그러나 농민에게 농지란 단순히 농작물을 경작하는 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농지는 땀 흘려 일궈낸 일터이자 안정된 미래를 가꿔가는 삶의 터전이다.

농민 대부분은 농지야 말로 평생 모아온 유일한 자산이다. 농지는 농민의 희로애락이 서려있고, 이곳에서 국민이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가 생산되며, 국가식량안보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한국농어촌공사는 농지은행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은퇴하거나 이농한 농민의 농지를 매입하거나 임차해서 기존 농민과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 등에게 제공하면서 농지의 생산적인 이전과 효율적인 관리를 도모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지가 투기수단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을 반성하면서 농지 소유에 대한 근본적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따라 농지공적장부(농지원부) 전면 손질, 농지 특별사법경찰제 도입 등 농지관리체계 개편을 위한 카드를 꺼내들었고, 농지 투기를 막는 농지법 개정안이 잇달아 발의되고 있다.

농어촌공사 역시 새로운 농지관리제도의 정착에 힘을 보탠다. 농지를 상시적으로 조사, 관리하고 농지정보를 수집, 분석, 제공함으로써 정부의 과학적 농지관리를 뒷받침할 예정이며 농지관리만을 전담할 조직도 준비하고 있다. 

인류문명은 언제나 비옥한 흙에서 시작되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모두 토양이 비옥한 큰 강 유역에서 태동하였으며, 이때부터 토지는 인류를 먹여 살리는 근간이 되어왔다.

박경리 소설「토지」나 펄벅의「대지」에서도 ‘땅’은 우리의 존재기반이자 우리의 삶 그 자체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토지의 본래가치를 되짚어보고 회복하는 것이 농지투기와 같은 현재의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가장 바람직한 단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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